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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시장’ 버린 유럽 보조금 대란… 한국 배터리·철강 투자 지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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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시장’ 버린 유럽 보조금 대란… 한국 배터리·철강 투자 지도 바뀐다

글로벌 보조금 경쟁 동기화… EU, 금기 깨고 ‘미·중식 국가 주도 경제’ 체제 전환
독일·프랑스 재정력이 곧 투자유치 격차… 동유럽 기지 비용 구조 전면 왜곡 비상
유럽연합(EU)이 장기간 고수하던 국가 보조금 금지 원칙을 대폭 완화하고 산업정책 도구로 전환하며, 미국·중국식 산업정책으로의 급격한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EU)이 장기간 고수하던 국가 보조금 금지 원칙을 대폭 완화하고 산업정책 도구로 전환하며, 미국·중국식 산업정책으로의 급격한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유럽연합(EU)이 장기간 고수하던 국가 보조금 금지 원칙을 대폭 완화하고 산업정책 도구로 전환하며, 미국·중국식 산업정책으로의 급격한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5(현지시각) 코로나19 팬데믹과 2022년 에너지 위기를 거치며 EU 회원국의 보조금 지출이 2014년부터 2019년 사이에만 이미 5배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비상 규제 완화가 아니라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물린 글로벌 보조금 경쟁의 동기화현상이다.

문제는 재정 여력이 풍부한 독일과 프랑스로 자금이 쏠리며 단일 시장이 내부에서부터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현지에 생산 거점을 확보해야 하는 한국의 배터리, 자동차, 친환경 철강 기업들은 이제 유럽 투자를 시장 논리가 아닌 회원국별 재정 능력에 베팅하는 게임으로 재정의하고 투자 지형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재정 격차가 유치 격차로… 단일시장 내 국가 간 경쟁변질

EU 회원국들이 지출한 국가 보조금은 통계가 확정된 가장 최근 연도인 2024년 기준 총 16823000만 유로(296조 원)에 달한다. 이는 EU 전체 국내총생산(GDP)1.0%에 육박하는 규모로, 회원국의 재정여력 격차가 곧 투자유치 격차로 직결되는 구조를 극명히 보여준다. 특히 전체 보조금 지출액의 25.0%에 가까운 자금이 독일 한 국가에서 나왔다. 이는 단일시장 내에서 사실상의 국가 간 무한 경쟁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스웨덴 친환경 철강사 스테그라의 헨릭 헨릭손 최고경영자(CEO)는 자사는 자본 지출의 5.0%만 정부 보조로 받았으나 다른 국가에서는 프로젝트 비용의 최대 60.0%까지 지원받는 사례가 속출한다며 자금력이 탄탄한 특정 국가로만 투자가 집중되는 위험을 경고했다. 실제로 스테그라 그룹은 재생에너지 환경이 우수한 포르투갈 대신 보조금 규모가 훨씬 큰 프랑스를 투자 후보지로 저울질했다. 자금력이 약한 소국들은 투자 유치 경쟁에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구조다.

시장 왜곡 심화… 유럽의 단일 시장 강점 스스로 파괴


유럽 내부에서도 보조금 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경쟁국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토마소 발레티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교수는 유럽의 가장 큰 비교 우위는 거대한 단일 시장의 개방성이라며 국가별 보조금 쪼개기는 미국과 중국이 가질 수 없는 유럽 고유의 강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고 진단했다. 과거 EU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보조금을 허용했으나, 이제는 산업 정책의 핵심 도구로 남발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2021년 말부터 2023년 중반까지 유럽 각국이 지출한 에너지 보조금 5400억 유로(950조 원) 중 독일이 1580억 유로(278조 원)를 독식했다. 경제 싱크탱크 브뤼겔의 헤더 그라베 선임연구원은 독일의 과도한 보조금이 미래 위기에 대응한 체질 개선을 유도하기보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한계 기업의 생명을 연장하며 지정학적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단기적으로 현지 기성 제조업의 가동률을 방어하는 완충 역할을 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동유럽 비용 구조 왜곡… 한국 기업 이원화·분리 전략짜야

이러한 보조금 지형 변화는 한국 기업들이 고수해 온 동유럽 투자 공식(저임금+EU 시장 접근성)의 비용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착화된 동유럽의 고에너지 비용, 서유럽 중심의 운영비(OPEX) 보조금 지급, 그리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 비용 부담이 맞물리면서 기존 동유럽 기지의 유인책이 급격히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현지 철강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철강 업계의 고심도 깊어진다. 독일 철강사 잘츠기터 등은 청정 철강 전환 다리를 건너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서유럽에서는 보조금 수혜를 극대화할 현지 합작법인(JV)을 세우고, 동유럽은 기존 생산기지 기능만 유지하는 이원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재·완성차를 국가별 보조금 규모에 따라 분산 배치하는 가치사슬 분리 전략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한다.

투자자 체크포인트


유럽이 단일 시장의 원칙을 저버리고 보조금 전쟁을 본격화함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유럽 투자는 이제 시장의 효율성이 아닌 정부의 재정 동원 능력에 베팅하는 게임으로 변모했다. 자산 운용사와 기업 재무 책임자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다음 세 가지 지표를 반드시 실시간으로 점검해야 한다.

첫째, 독일의 인더스트리스트롬프라이스(임시 산업용 전력가 감면제) 지속 여부다. 독일 정부가 자국 기업에 주는 전력 보조금의 연장 여부는 유럽 내 철강·배터리 가격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한국 기업들의 마진 구조를 직접 타격할 수 있다.

둘째, EU 집행위원회의 제조업 가동 비용(OPEX) 보조금 허용 범위 확대 규정 개정 추이다. 초기 투자(CAPEX)를 넘어 운영비까지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서유럽 공장의 내부수익률(IRR)이 급등해 투자 쏠림이 한층 가속화된다.

셋째, 동유럽(폴란드·헝가리) 대비 서유럽(독일·프랑스)의 프로젝트당 국고 보조율 격차 변화다. 서유럽으로의 보조금 편중도가 심화될 경우, 기존에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던 동유럽 생산 설비의 자산가치 재평가가 강력히 요구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