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뒤흔든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역설적으로 거대한 생산 라인이 아닌 사내 타운홀 미팅에서 연출되었다. 삼성전자의 거액 성과급 합의 소식이 전해진 직후 TSMC 내부에서 동요가 일자, 웨이저자(C.C. Wei)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올해 직원 이익 배분 성과급을 전년 대비 30% 이상 올리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무노조 경영 체제임에도 내부의 불만을 기민하게 감지하고, 2025년 기준 약 4조 94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인재 보상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2026년 1분기에만 약 27조 4570억 원이라는 경이로운 순이익을 낸 TSMC의 자신감이자, 기업의 압도적 수익을 핵심 인재 유출 방어라는 '초격차의 해자(Moat)'로 치환시키는 고도의 경영 전략이다. 시장의 단기적 변동성이나 사이클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기술적 진보와 사람이라는 본질에 집중해 온 인물, 웨이저자의 삶과 철학은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어떻게 제국을 건설하고 군림하는가에 대한 생생한 교훈을 던져준다.
웨이저자는 1953년 대만 중서부의 난터우현(南投縣)에서 태어났다. 대만이 농업 중심 경제에서 첨단 기술 산업으로 국가 체질을 개조하려는 열망이 꿈틀대던 때였다. 영특한 두뇌를 자랑했던 그는 대만 과학기술 인재의 최고 산실로 불리는 국립교통대학교(현 국립양명교통대학교, NYCU) 전기공학과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엔지니어의 길로 접어들었다. 교통대에서의 수학은 단순히 학위 취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 신주(Hsinchu) 과학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만 반도체 생태계, 이른바 '교통대 마피아'라 불리는 막강한 인맥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훗날 TSMC가 글로벌 1위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웨이저자와 호흡을 맞춘 수많은 고위 임원과 대만 팹리스(Fabless) 기업 리더들이 바로 이 교통대 동문들이다. 현재 TSMC 경영진의 상당수가 교통대 출신이라는 점은, 그의 리더십이 수직적 통제를 넘어 끈끈한 학연과 기술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지식 네트워크에 기반함을 시사한다.
예일대 박사 학위 취득 후 웨이저자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인 미국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의 첫 직장은 당대 최고의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였다. 이 우연은 훗날 그가 모시게 될 TSMC 창업주 장중머우 역시 TI에서 부사장까지 지냈다는 점과 흥미롭게 오버랩된다. 연구개발(R&D) 부서에서 뼈대를 굵힌 그는 유럽계 반도체 거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로 자리를 옮겨 논리 회로 및 SRAM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나아가 싱가포르 파운드리 업체인 차터드 반도체(Chartered Semiconductor) 수석 부사장을 역임하며, 기술 로드맵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경영자로서의 시야를 확보했다. 설계와 생산의 경계를 넘나들며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한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기술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시장 수요와 기술 공급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98년, 45세의 웨이저자는 귀국하여 TSMC에 합류했다. 주류 기술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서 핵심 캐시카우였던 6인치 및 8인치 팹(Fab) 운영을 총괄하게 된 그는, 특유의 정밀한 공정 관리로 무려 1만 2000명에 달하는 직원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2009년, 그의 인생을 뒤흔드는 극적인 인사 발령이 일어난다. 창업주 장중머우가 그를 전사 생산 라인에서 배제하고 '비즈니스 개발(Business Development)' 부서장으로 발령 낸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하 직원이 1만 2000명에서 단 6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외부에서는 권력 투쟁에서의 패배이자 좌천으로 해석했다. 이는 장중머우가 철저하게 기획한 '초격차 리더를 향한 혹독한 후계자 수업'이었다. 장중머우는 훗날 "웨이저자는 제조와 R&D 역량은 세계 최고였지만 마케팅 경험이 부족했다. 시장을 지배하려면 고객 스스로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가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고 회고했다. 웨이저자는 불만 없이 이 60명짜리 부서를 맡아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청취했다. 수년간 비즈니스 개발을 이끌며 그는 TSMC의 3대 핵심 기둥인 'R&D, 제조 역량, 고객 비즈니스'를 모두 통달한 유일무이한 인물로 거듭났다. 이후 장중머우는 그를 가리켜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CEO(the best-prepared CEO)"라 극찬했다.
대외적으로 비치는 웨이저자의 모습은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다. 딱딱한 반도체 심포지엄이나 긴장감이 감도는 주주총회에서도 특유의 자기 객관화와 여유로운 농담으로 청중의 경계심을 허문다. 직관적이고 친근한 비유로 소통을 이끄는 달인이다.가격 협상이나 기술 로드맵을 결정하는 비즈니스 테이블 위에서는 누구보다 차갑고 단호한 승부사로 돌변한다. 애플(Apple)의 팀 쿡,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과 같은 거물들을 상대로도 결코 TSMC의 가치를 헐값에 넘기지 않는다. 경쟁사들이 수율 문제로 단가 인하 경쟁을 펼칠 때, 웨이저자는 오히려 "압도적인 수율과 납기 안정성이라는 가치에 비하면 우리의 가격은 여전히 싸다"며 자신 있게 단가를 인상했다. '가치 기반 가격 결정'이라는 원칙 아래 대체 불가능한 해자를 제공하고 막대한 이익률을 챙기는 그의 협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18년 장중머우가 은퇴하며 조직은 변곡점을 맞았다. 이사회는 류더인(Mark Liu)을 회장으로, 웨이저자를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하는 '투톱(Co-CEO) 체제'를 가동했다. 류더인 회장이 지정학적 리스크 방어와 글로벌 외교에 집중하는 동안, 웨이저자 CEO는 연구개발과 제조 수율 안정화, 핵심 고객사 관리를 전담했다.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붕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도 웨이저자는 7나노, 5나노, 3나노로 이어지는 초미세 공정 양산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집행했다. 특히 극자외선(EUV) 장비의 선제적 도입과 AI 서버용 칩에 필수적인 CoWoS(3D 패키징) 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전적으로 그의 통찰이 빚어낸 결과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