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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경제대국 中, ‘개도국 차입국’ 지위 막 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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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경제대국 中, ‘개도국 차입국’ 지위 막 내리나

세계은행, 中 대출 2031년까지 종료 추진…트럼프 행정부 압박 속 대중국 대출 단계적 종료
2031년까지 총 20억달러(약 3조1000억원) 한도…이후 신규 대출 중단
세계은행이 중국에 대한 대출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종료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개발도상국 차입국 지위와 국제개발금융 내 역할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세계은행이 중국에 대한 대출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종료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개발도상국 차입국 지위와 국제개발금융 내 역할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챗GPT

세계은행이 중국에 대한 대출을 오는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종료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더 이상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다자개발은행의 차입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다. 미국과 일부 회원국이 수년간 세계은행의 대중국 대출 중단을 요구해 온 압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세계은행이 중국에 대한 대출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종료하는 계획을 이사회에 제출했다고 1일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소식통을 인용해 세계은행이 중국과 합의한 5년짜리 국가협력체계 안에서 대중국 대출을 줄여 2031년 이후에는 중단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방안은 다음달 20일 열리는 주간 세계은행 이사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공식 표결이 필요한 사안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 2031년까지 20억달러 한도


이 계획의 핵심은 대출 총량 제한이다.

세계은행의 중국 대상 대출은 지금부터 2031년까지 총 20억달러(약 3조1000억원)를 넘지 않게 된다. 이후에는 중국에 대한 세계은행 대출이 종료된다.

세계은행의 대중국 대출은 이미 최근 몇 년 동안 줄어들었다. 2017년 연간 24억달러(약 3조7000억원) 수준이던 대중국 대출은 2025년 7억5000만달러(약 1조1600억원)로 감소했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은행 산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대출을 통해 환경, 보건, 농촌개발, 제도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금을 빌려 왔다. 그러나 중국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자체 개발금융 역량이 확대되면서 세계은행 차입국으로 남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다.
세계은행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새 장을 여는 결정”이라며 “중국이 개발 여정을 거쳐 더 이상 세계은행 같은 개발기관의 자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 미국 “중국은 지원 받을 나라 아니다”


미국은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미 재무부 대변인은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인 만큼 다자기구에서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세계은행의 대중국 대출 종료가 올바른 방향의 조치라며 다른 개발금융기관들도 같은 흐름을 따르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존 입장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세계은행이 중국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있고 일대일로 등을 통해 다른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대출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세계은행 차입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미국 의회와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중국은 세계은행에서 차입하는 동시에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에 개발금융을 제공하는 주요 채권국이 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활용해 국제기구의 혜택을 받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조치는 이런 논란에 제도적 마침표를 찍는 성격이 있다. 중국이 세계은행의 주요 차입국에서 졸업하는 방향으로 공식 경로가 마련된 것이다.

◇ 폴란드와 비슷하지만 예외 조항 없어


세계은행은 이달 초 폴란드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환 계획에 합의했다. 폴란드 역시 2031년까지 세계은행 개발대출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다만 중국과 폴란드의 계획에는 차이가 있다. 폴란드의 경우 우크라이나 관련 지원이나 원자력 에너지 프로젝트에는 일부 예외가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 대상 계획에는 이런 예외 조항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중국 관련 문안이 현대 세계은행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축에 속한다며 폴란드와의 최근 합의보다도 강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단순한 고소득 전환 국가가 아니라 전략 경쟁국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은행 대출 종료는 개발금융 문제이지만 그 배경에는 미중 전략 경쟁과 국제금융 질서 재편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 중국의 ‘개도국 지위’ 논란 다시 부각


세계은행의 대중국 대출 종료 추진은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부각시킨다.

중국은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다. 첨단 제조업,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통신장비, 인공지능 등 여러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 동시에 중국은 여전히 1인당 소득과 지역 격차, 농촌 빈곤, 고령화,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개발도상국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국제기구 안에서 중국의 지위는 복잡하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기후변화 협상, 개발금융 논의에서 중국은 때로는 개발도상국 권리를 주장하고, 때로는 주요 경제대국으로서 책임을 요구받고 있어서다.

세계은행 대출은 이 논쟁의 상징적인 분야다. 세계은행의 목적은 빈곤 감축과 개발 지원이다. 중국이 여전히 일부 개발 과제를 안고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중국이 다른 나라에 대출을 제공하는 주요 채권국이라는 점에서 세계은행의 제한된 자원을 계속 활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이 강해졌다.

이번 계획은 세계은행이 중국을 더 이상 전통적인 개발 차입국으로 보지 않겠다는 방향 전환으로 해석된다.

◇ 세계은행 자금, 더 가난한 국가로 이동하나


세계은행이 중국 대출을 줄이면 제한된 대출 여력은 저소득국과 취약국, 기후·보건·식량안보 위기를 겪는 국가로 더 많이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개발도상국의 부채 부담, 기후재난, 식량 불안, 에너지 전환, 보건 체계 강화 등 여러 과제에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주요 주주국들은 세계은행이 자금 사용의 우선순위를 더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 대출 축소는 이런 요구와 맞물려 있다. 중국처럼 시장에서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국가는 세계은행 대출에서 졸업하고, 자금 접근성이 낮은 국가에 더 많은 여력을 배분해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세계은행 내부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개발 경험을 가진 국가 중 하나이며, 기후변화와 보건, 환경, 빈곤 감축 분야에서 세계은행과 협력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중국과 세계은행의 관계 종료라기보다, 돈을 빌려주는 관계에서 정책 협력과 지식 공유 중심의 관계로 이동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 다른 다자개발은행으로 압박 확산 가능성


미국 재무부가 다른 개발금융기관에도 같은 흐름을 요구한 점은 주목된다.

세계은행이 중국 대출을 중단하면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른 다자개발은행에도 비슷한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미국은 주요 다자개발은행의 핵심 주주국이다. 미국이 중국 차입 중단을 국제금융기구 전반의 기준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의 개발금융 지위는 더 좁아질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상징적 부담이 작지 않다. 실제 자금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은행 대출은 중국 경제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은행 차입국 지위 종료는 중국이 더 이상 국제개발금융의 수혜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공여국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이 일대일로와 글로벌 사우스 외교에서 내세워온 개발도상국 대표 이미지와도 충돌할 수 있다. 중국은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개도국 지위를 계속 주장하더라도 세계은행 대출 졸업이라는 상징적 변화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 중국 경제 위상 변화의 상징


세계은행의 대중국 대출 종료 추진은 중국 경제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국은 한때 세계은행의 개발 경험과 자금 지원을 활용해 인프라, 환경, 제도 개선을 추진한 대표적 성공 사례였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제공하고 국제경제 질서에서 더 큰 책임을 요구받는 나라가 됐다.

이번 결정은 중국의 경제력이 커진 데 따른 자연스러운 졸업이면서, 동시에 미중 갈등 속에서 국제기구의 역할이 재조정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세계은행 대출 종료는 중국의 실질적 자금 조달에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있지만 국제사회가 중국을 어떤 지위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상징적 의미는 크다는 지적이다.

2031년 이후 중국이 세계은행 차입국에서 빠지면 중국과 세계은행의 관계는 개발자금 수혜에서 정책 협력과 글로벌 과제 대응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