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엔 마이너스, 저녁엔 400유로…배터리 부족·가스발전 의존이 가격 변동 키워
이미지 확대보기한낮에는 전력이 남아돌아 가격이 0 아래로 떨어지지만 해가 지는 저녁에는 공급 부족이 발생해 전력값이 급등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의 일일 전력 가격 변동폭이 태양광 발전 급증으로 더 심해지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여름철에는 거의 매일 정오 무렵 태양광 발전량이 전력망을 압도해 가격이 급락하고, 저녁에는 태양광 출력이 사라지는 가운데 냉방 수요가 늘며 가격이 치솟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전력 수요와 태양광 발전량을 함께 그렸을 때 오리 모양의 곡선처럼 보인다고 해서 ‘덕 커브’로 불린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력 생산비를 낮추는 동시에 전력망 운영과 가격 안정에는 새로운 부담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 독일, 한낮 마이너스서 저녁 400유로
가격 변동은 독일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독일 전력시장에서 전력 가격은 정오 무렵 0 아래로 떨어졌다가 오후 8시에는 메가와트시당 거의 400유로(약 68만원)까지 뛰었다. 같은 날 몇 시간 사이에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에서 고가 수준으로 급반전한 것이다.
한낮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넘어선다. 전력은 대규모 저장이 어렵기 때문에 남는 전기를 모두 흡수하지 못하면 가격이 0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 발전사업자가 전력을 팔기 위해 오히려 돈을 내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나 저녁에는 상황이 반대로 바뀐다. 해가 지면 태양광 발전이 급감하고, 여름철에는 냉방 수요가 여전히 높다. 바람까지 약하면 풍력도 부족해져 전력망은 가스발전이나 석탄발전 같은 비싼 백업 전원에 의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력 가격은 짧은 시간에 급등한다. 블룸버그는 이런 변동폭이 다른 원자재 시장의 움직임을 크게 웃돌 정도로 커졌다고 전했다.
◇ 배터리 부족이 핵심 병목
문제의 핵심은 저장장치 부족이란 지적이다.
유럽은 태양광을 빠르게 늘렸지만 남는 전력을 저장할 배터리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유럽의 태양광 설비용량은 2022년 이후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러나 유틸리티급 배터리 저장장치는 태양광 설비용량의 약 3% 수준에 그친다.
배터리가 충분하다면 한낮에 남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저녁 피크 시간대에 내보낼 수 있다. 그러면 가격 급락과 급등을 모두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저장능력은 태양광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낮에는 전력이 버려지고, 저녁에는 비싼 발전소가 투입된다. 소비자는 낮 시간대의 무료에 가까운 전력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저녁 피크 가격 상승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전력시장에서는 태양광 발전소를 더 자주 꺼야 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전력망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공급이 몰리면 발전 출력을 제한해야 한다. 이는 태양광 발전사업자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일부 투자자가 시장 이탈을 검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평균 전력값은 오히려 상승
한낮 전기값이 싸졌다고 해서 전체 전기요금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가 유럽 전력거래소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4~6월 평균 하루 전력 도매가격은 2023~2025년 같은 기간 평균과 비교해 영국에서 27%, 독일에서 22%, 스페인에서 9% 올랐다. 프랑스는 원전 비중이 높아 저녁 시간 비용을 억제하면서 예외적으로 가격이 안정적이었다.
평균 가격이 오른 이유는 가스 가격 상승과 저녁 피크 시간대 급등 때문이다. 한낮에는 전력값이 매우 낮아지지만 저녁 몇 시간 동안 가격이 크게 뛰면 하루 평균은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
이는 에너지 전환이 전기요금을 낮추기만 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태양광은 가장 싸게 지을 수 있는 발전원 가운데 하나지만 저장장치와 전력망, 수요 조절이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소비자 요금 안정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 EU도 가격 급등 조사
유럽 당국도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10월 에너지규제협력청 ACER에 동남부 유럽의 전력 가격 급등을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전력 가격 급등을 막고 에너지 비용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ACER는 일일 전력 도매가격 변동폭이 2020년보다 약 5배 커졌다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력 공급 구조를 바꾸면서 전력망의 유연성이 훨씬 중요해졌다는 진단이다.
ACER는 배터리 저장 확대를 포함한 조치를 요구했다. 국가 간 전력망 연계와 수요반응, 저장장치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전력 시스템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지난해 발생한 대규모 정전도 전력망 운영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력 수급을 실시간으로 맞추는 기술과 시장 설계가 더 중요해진다.
◇ 가스발전은 짧게 돌고 비싸진다
태양광 확대는 화석연료 발전소의 경제성도 바꾸고 있다.
과거 가스발전소는 더 긴 시간 전력을 공급했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이 늘면서 낮 시간대에는 가스발전소가 시장에서 밀려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신 저녁이나 바람이 약한 시간처럼 전력이 부족한 순간에만 급히 투입되는 역할이 커졌다.
이렇게 운전 시간이 줄면 발전소는 더 짧은 시간에 고정비와 가동비를 회수해야 한다. 그 결과 전력을 생산하는 시간대에는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게 된다.
에너지애스펙츠의 사브리나 케른비흘러 애널리스트는 화석연료 발전소들이 이제 물량보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퀴노르 계열 단스케코모디티스의 숀 포크스도 일부 가스 피크발전소는 가동 가능한 시간이 줄어든 만큼 기동 비용과 운영비를 짧은 시간 안에 회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력 가격의 저점과 고점이 동시에 더 극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뜻한다. 한낮 태양광 과잉은 가격을 낮추고 저녁 가스발전 의존은 가격을 끌어올린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