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코덱스 마이크로는 오픈AI가 키보드 제조사 워크라우더와 함께 만든 제품으로, 코딩 인공지능 '코덱스'에 일을 맡기고 결과를 확인하는 데 쓰인다. 버튼 하나로 음성 입력을 시작하고, AI가 내놓은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다이얼을 돌리면 AI의 추론 깊이가 달라진다. 간단한 일은 빠르게 끝내고, 까다로운 문제에는 더 오래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키에 들어오는 불빛은 AI가 지금 생각하는 중인지, 작업하는 중인지, 사람의 답을 기다리는 중인지를 알려 준다. 요컨대 이 키보드는 무언가를 '쓰는' 도구가 아니라 무언가를 '시키는' 도구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지난 반세기 동안 키보드는 사람이 기계의 언어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명령어를 외우고, 문법을 지키고, 오타 하나에 프로그램이 멈추는 것을 견뎌야 했다. 마우스와 그래픽 화면이 등장하며 계단은 완만해졌지만 원리는 같았다. 사람은 여전히 메뉴를 찾아 헤매고, 아이콘을 눌러 기계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갔다.
이제 AI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방향이 뒤집히고 있다. 기계가 사람의 언어로 올라온다. 사람에게 남는 일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고, 돌아온 결과가 마음에 드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열세 개의 키는 바로 그 두 가지, 지시와 판단을 위해 남겨진 최소한의 손잡이다.
빅테크들이 저마다 새로운 입력 장치를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메타의 '뉴럴 밴드'는 손목 근육의 신경 신호를 읽어 미세한 손가락 움직임을 명령으로 바꾼다. 스마트 안경과 짝을 이뤄 메시지를 확인하고 실시간 번역까지 해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은 음성으로 부르면 사용자의 화면을 함께 보며 질문에 답하고 작업 방법을 일러 준다. 손목의 떨림, 목소리, 화면 공유. 경로는 다르지만 지향점은 하나다. 사람이 기계에 맞추는 수고를 줄이고, 의도만 전하면 나머지는 기계가 알아서 하는 세계다.
올트먼의 선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상대가 삼성이라는 데 있다. AI 기업의 수장이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경영진에게 건넨 것이 칩도, 서버도 아닌 손바닥만 한 키보드였다. AI가 일상으로 스며들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막대한 연산과 메모리가 돌아가야 한다. 다이얼을 한 칸 돌려 AI에게 더 깊이 생각하라고 지시하는 순간, 데이터센터 어딘가에서는 반도체가 그만큼 더 일한다. 책상 위의 작은 장치와 공장 속의 거대한 설비가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 선물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물론 들뜰 일만은 아니다. 일을 맡기는 것이 쉬워질수록 맡긴 일을 제대로 평가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수락 버튼은 누르기 쉽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코드 한 줄을 직접 쓰지 않는 개발자가 AI가 써 준 코드의 오류를 어떻게 알아챌 것인가. 글자 하나 치지 않는 사용자가 기계가 내놓은 답의 허점을 어떻게 짚어낼 것인가. 열세 개의 키가 사람의 손을 자유롭게 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판단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은 몇 개의 버튼에 실리는 무게는 이전의 수십 개 키보다 무거워질 것이다.
키보드가 당장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확한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 글쓰기, 숫자 하나가 중요한 작업에서 자판은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도구다. 다만 AI에게 말로 일을 맡기고 작은 손동작으로 결과를 고르는 방식이 익숙해지면, 책상 위 풍경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한 손에는 몇 개의 버튼, 귀에는 마이크, 눈앞에는 AI가 펼쳐 놓은 선택지. 그런 장면이 낯설지 않은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