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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T] 배우 강수연의 마지막 불꽃…넷플릭스 영화 '정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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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T] 배우 강수연의 마지막 불꽃…넷플릭스 영화 '정이' 리뷰

뛰어난 시각효과와 액션 일품…SF 상상력은 다소 아쉬운 편
영화 '정이'. 사진=넷플릭스이미지 확대보기
영화 '정이'. 사진=넷플릭스
한국영화계에서 정통 SF영화는 위험부담이 큰 편이다. 그동안 SF 장르는 시각효과와 미술에 큰 비용이 소모되는 만큼 한국영화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관객들에게 SF는 여전히 낯선 장르였고 그래서 정작 SF영화가 나왔을 때 쉽게 마음을 얻지 못했다.

한국영화산업의 성장과 OTT 플랫폼의 등장 이후, SF 영화를 볼 수 있는 길은 많이 열리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던 '승리호'는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소개됐고 CJ ENM의 영화 '서복'도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정이'는 넷플릭스가 내놓은 두 번째 한국 SF영화다. 그동안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작품 중에서는 영화 '승리호'와 드라마 '고요의 바다'가 SF 작품으로 등장한 바 있다.

다만 '승리호'는 메리크리스마스가 극장 개봉용으로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판권을 구입해 공개한 영화라면 '정이'는 '지옥', '방법'을 제작한 클라이맥스스튜디오가 넷플릭스와 협업해 넷플릭스 공개를 목적으로 제작한 영화다.
'정이'는 '지옥',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강수연, 김현주, 류경수가 출연한 작품이다. 22세기 지구에서 AI 연구소 연구팀장인 윤서현(강수연)이 과거 내전 당시 전설의 용병이었던 자신의 어머니 윤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전투로봇을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정이'는 인간의 뇌를 복제해 전투로봇에게 이식하는 과정에서의 복제인간에 대한 윤리를 묻는다. '복제된 인간에게도 인권이 보장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SF영화가 가진 오래된 화두이며 오늘날 과학계에도 남겨진 숙제다.

영화 '정이'. 사진=넷플릭스이미지 확대보기
영화 '정이'. 사진=넷플릭스

그러나 '정이'는 이 같은 화두를 던질 뿐 여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정이'는 복제 AI가 된 엄마를 연구해야 하는 팀장 서현의 고뇌를 다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성이 사라진 미래 사회에서의 모성을 드러내고 있다.

배우 강수연은 2007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이후 15년만에 연기에 복귀했다. 강수연은 서현의 고뇌를 고스란히 표현하며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이 영화가 강수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 속 서현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김현주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통 액션연기를 선보인다. 김현주의 팬이라면 이전에 본 적 없는 색다른 모습에 박수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류경수는 아재개그를 남발하는 비호감 소장을 연기해 직장인들의 PTSD를 자극할 만한 명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에 '작은 아씨들'에서 김고은의 아역으로, 영화 '스위치'에서 로희로 출연한 박소이의 큰 눈망울도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의 미술은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물씬 강조하고 있어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킨다. 특히 놀라운 수준의 CG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훌륭하다. '정이'에는 시각효과를 위해 덱스터 스튜디오를 포함한 6개의 회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 베트남,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참여한 'CG 드림팀'인 셈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시각효과는 탁월한 수준이지만, 영화가 구현하는 ICT 기술에는 크게 새로운 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로봇 '정이'를 구현하는 기술은 뇌를 복제해 로봇에 이식하고 이를 개조해 전투능력을 개선하면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영화 속 연구소는 로봇 '정이'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서 진행한다.

'정이'는 뇌과학 연구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에게 자문을 받을 정도로 신중함을 더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2016년 뉴럴링크를 설립하고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연구를 진행할 정도로 ICT 기반 뇌과학 연구는 고도화돼있다. 실제 '아바타: 물의 길'에서도 뇌를 복제해 아바타에 이식하는 기술이 등장한다.

그에 비하면 '정이'에서 뇌를 복제해 로봇에게 이식하는 원리는 꽤 크고 둔하다. SF영화인 만큼 시각적으로 이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크겠지만, 이보다 세련되게 다루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22세기라면 아무리 기후변화와 전 지구적 전쟁이 발발했다 하더라도 통신과 데이터 기술은 고도화됐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이'의 SF 기술 구현은 현재의 IC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 이전 SF영화의 클리셰를 답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관객에게 새로운 것을 선사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이'는 SF적 상상력에서 다소 아쉬운 면이 드러나지만, 뛰어난 시각효과와 그 위에 덧씌워진 액션연기가 강점인 영화다. 무엇보다 배우 강수연을 사랑한 올드팬들이라면 이 배우의 마지막 불꽃을 보는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영화 '정이'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