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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22년 디딤돌로 한국 '미들파워' 중견강대국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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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22년 디딤돌로 한국 '미들파워' 중견강대국 성장"

[김흥기의 파워인터뷰(8)]공직 물러난 뒤 '아시아 녹화사업' 전념 권병현 前 주중대사

대한민국 얼마나 컸는지 전 세계는 아는데 한국인들만 몰라


문명의 중심 동양으로 이동 글로벌시대 리더국가 역할해야


▲권병현전주중대사/사진=김태훈기자이미지 확대보기
▲권병현전주중대사/사진=김태훈기자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 기자] 올해는 한‧중 수교 22주년이 되는 해다. 지금은 한‧중 수교의 각종 혜택을 누리며 한‧중 수교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1992년 당시에는 한‧중 수교가 동북아의 지형을 바꾸어놓는 대사건이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예비교섭 대표로서 한‧중 수교의 산파역할을 한 권병현 전 주중한국대사는 보다 진전된 한‧중 관계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전문 직업외교관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중국 네이멍구의 사막화와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 사막에 나무심기 운동을 해온 권 전 대사는 관심을 북한으로 돌려 최근 고건 전 총리와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과 함께 ‘아시아 녹화기구’를 발족시켰다. <김흥기의 파워 인터뷰>는 권병현 전 주중한국대사이자 (사)미래숲 대표를 만나 북한의 산림과 식량문제, 그리고 연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세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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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쿠부치(庫布其) 사막을 다녀오셨지요?
“한국 미래숲 녹색봉사단(13기)과 함께 네이멍구 쿠부치 사막에 포플러 4400그루와 사막버들을 심고 왔어요. 쿠부치 사막은 세계 아홉 번째로 큰 사막으로 동북아로 오는 황사 중 40% 이상의 진원지입니다. 이곳에서 날아드는 모래는 매년 서울 면적의 5배에 이르는 땅을 뒤덮습니다. 지난 2002년 이곳에 처음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생각했지만 13년 동안 2500㏊ 면적에 총 64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어요. 올해 60만 그루를 더 심으면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녹색장성’이 완성될 것입니다.”

-중국에서 얻은 노하우로 북한을 살리기 위해 최근 ‘아시아 녹화기구’를 창립하셨는데….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중국의 사막화가 27%이고, 북한의 사막화가 30%를 넘어서 북한의 토지 사막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릅니다.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북한의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알 수 있지요. 중국 네이멍구에서 실시한 사막방지화 성공사례를 모델로 북한의 사막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 사막화를 막는 일은 통일 준비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요. 진정으로 북한을 도와주되, 소아적인 입장을 떠나 삼천리 금수강산을 우리 손으로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때 산림녹화에 성공한 기술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창립한 ‘아시아 녹화기구’를 통해 산림녹화와 북한의 식량문제, 연료문제를 임농복합산업으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15일에 열린 한중일 협력 국제포럼에 참가하셨는데,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역사 갈등으로 미래보다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어요. 이날 포럼에서도 일본 대표는 상당히 민감한 발언을 하더군요. 자기 나라의 역사가 중요하겠지만 남의 나라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한중일 협력 국제포럼이 출범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사실은 한중수교 후 1999년 제가 중국에 있을 때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한국대사관 안에 설치하고 이후 한중일 국제포럼을 열고 있어요. 당시 주룽지 총리를 만나 ‘한중일 3국이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는데 바로 ‘안돼’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분도 ‘안돼’라고 해요. 그래서 주룽지 총리의 은사되는 칭화대 라원정 교수(국제경제학의 태두)를 만나 ‘이제 중국은 얼마나 컸나. 중국이 능동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껴안고 동북아 3국을 만나 주도해도 되는 입장 아니겠는가’하고 설득했어요. 그 분이 중국 국가개발발전위원회(DRC)의 왕멍쿠이(王梦奎) 위원장에게 지시를 해 일사천리로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이 설치되고 한중일 국제회의가 열렸어요.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 최고지도자에게 직보를 했고, 그해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처음으로 삼각 대면을 할 수 있었어요.”

한중수교 中서도 천지개벽 평가


수교조건은 "북한의 혈맹 없다"


당시 "대만버렸다" 엄청난 비판


국제적 대세는 중국으로 기울어


외교의 절체절명의 과제 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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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22주년을 맞았습니다. 한‧중 수교의 주역으로서 참으로 잘 된 점을 꼽는다면….

“한‧중수교가 우리 역사 또는 동북아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한‧중수교가 동북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고, 중국은 이를 두고 상전벽해(桑田碧海) 또는 천지개벽이라고 해요.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정세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어요. 한‧중수교 당시 중국의 혈맹이라 불리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인데, 실제로는 중국이 김일성 주석 모르게 한‧중수교를 진행했어요. 물론 우리는 자유우방인 대만과 관계를 단절해야 했어요. 한‧중수교를 한 1992년 이전과 이후는 남북한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와 북한은 8년 간 중국과 정상외교 단절을 합니다. 한‧중 관계 개선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한‧중수교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한‧중수교를 할 때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입장을 받아냈어요.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지지를 했는데, 한계는 있었겠지만 중국이 북한을 저지하지 못하고 핵으로 나간 게 제일 안타깝습니다. 또 대만을 포함한 하나의 중국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병렬적으로 내세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이 한‧중수교 당시의 상황에서 더 진전되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앞으로 한‧중관계의 발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더 진전되고 중국과 더 많이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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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으로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설정했지만, 국민들은 중국이 북한 편이지 대한민국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중수교 교섭에서 그때 느낀 건 중국과 북한은 철저한 혈맹관계였어요. 북한의 신으로 추앙받던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어서 중국과 북한은 혈맹관계를 넘어 순치지간(脣齒之間)이었어요. 소련과 동구권이 개방되는 바람에 지구상에 사회주의로 남아 있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 두 나라밖에 없었어요. 따라서 중국과 북한은 특수한 관계였어요. 한‧중수교 때 한국의 입장에서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중국과 북한의 혈맹은 없다는 입장을 받아냈어요. 뿐만 아니라 한‧중수교에 대해 김일성 주석에게 미리 알리지도 않은 채 1992년 4월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 생일에 축하사절로 보내 약간 귀띔하는 수준이었어요. 북한의 입장에서는 혈맹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던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했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후로 김일성 주석은 이제 중국도 못 믿겠다고 얘기를 하며 김정일 위원장까지 포함해서 8년 간 중국과 왕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수교협상 비밀로 충격받은 北 8년간 김일성 부자 방중 안해


朴정부 대북정책 큰틀에선 옳아 北 쉽게 수용기대는 금물


북한 사막화 30%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사막화 진행


한국 성공적 녹화사업 전수‧통일준비 차원서 대단히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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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한‧중수교로 인해 우리는 대만을 잃었지만 중국은 북한을 잃지 않았지 않습니까?

“한‧중수교 후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주말 방송 심야 토론에서 토론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어요. ‘대만을 왜 헌신짝처럼 저버렸느냐’, ‘자유우방을 버리고 왜 공산국가인 중국과 서둘러 수교를 했느냐’는 비판이었어요. 물론 당시 우리 정서상 당연하다고 보았지만 이미 국제정세가 대만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세가 중국으로 기울었어요. 중국이라는 큰 흐름을 타지 않으면 안 되고 그 흐름을 타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중수교 후 증명되지 않았어요?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원과 기회, 인적교류, 물적인 상호이익,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적인 면에서 엄청난 국익을 가져왔어요. 정서적인 면에서는 다소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외교에서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푼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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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무역도 늘고 유학생도 엄청나게 몰려오는 등 양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 너무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언론이 모두 교류하며 양적‧질적 발전을 꾀해 나가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지난 22년간 양국 관계의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중국인도, 우리도 철두철미하게 상호이익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갔다고 생각해요. 두 나라가 너무 많은 것을 주워 담느라고 정신없이 뛰어왔는데, 이젠 빠진 부분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미래를 연구할 싱크탱크가 나오고 유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볼 게 아니라 미래의 지도자가 될 우리의 소중한 손님으로 대우하며 좀 더 섬세한 부분까지 잘 추스르기를 바랍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난 후 청와대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했다고 발표한 반면 신화통신에서는 그런 말이 없고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지지한다고만 했습니다. 중국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우리가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닌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중국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어요.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을 정도이지요. 북한의 비핵화가 중국의 국익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문 앞에서 북한이 가장 위험한 핵으로 장난질을 한다면 중국에 도움이 될 턱이 없지요. 한‧중수교 때 중국은 북핵을 분명히 반대했고, 우리는 한반도에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원했던 것이죠. 한‧중수교 당시 이 문제를 명확히 기술했고 지금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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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상당히 일관성도 있고 중장기 전략적인 면에서 틀을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쉽게 다가오리라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북한이 다른 선택권 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프로세스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북한이 드레스덴 선언에 응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고, 언젠가 응해오지 않으면 안 되는 방향으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를 바랍니다.”

-한‧중수교가 체결된 후 동북아시아의 외교지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의도적으로 독도와 센가쿠열도를 중심으로 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까요?

“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했으면 합니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나라나 이웃과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현명한 외교정책은 되도록이면 자칫 잘못하면 대외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걸 잘 봉합해놓고 넘어가는 게 제일 좋은 수(手)입니다. 전쟁, 공황, 천재지변 등의 비상사태로 인한 경제계의 급격한 변동으로 채무의 이행이 곤란하게 되었을 때, 법령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채무의 이행을 연장시키는 모라토리엄처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유예시켜 놓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정치 지도자가 국내 정치만 바라보고 외교문제를 정치에 이용하지 않도록 국민들이 현명하게 잘 지켜봐야 합니다. 외교문제를 이용하면 잠시나마 인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국민과 언론이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되도록 민감한 외교현안을 축소시키고 상호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활발하게 교류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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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발전이 영원한 화두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가 우리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한데….

“그렇습니다. 인류문명사에서 동방문명이 중심무대에서 가장 오랜 주인의 자리를 차지해 온 건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중국 옆에 한국이 있었어요. 역사는 순환하며 회복됩니다. 동방문명에서 서방문명으로 갔다가 이제는 다시 동방문명으로 돌아와 동방문명과 서방문명이 조화를 이루며 경쟁하고 발전하는 시기입니다. 위대한 인류문명의 물결이 태평양에서 동양으로 오고 있는 게 눈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동방문명의 기본철학인 ‘천인합일 사상’에 주목하고 있어요.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고, 인간과 지구도 하나이므로 인간은 자연을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자연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할 택해야 하지요. 인간과 자연이 동반자로서 발전해가려면 우리 고유의 철학인 천인합일 사상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동반성장하고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위대한 동방문명이 꽃이 피기를 희망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책의 서문을 써준 적이 있어요. 한국인이 뭘 모르느냐, 하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이 발전하고 성장했는지를 전 세계인이 다 아는데, 한국인만 모른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은 이미 옛날과 마찬가지로 문명의 중심무대에서 미들파워인 중견강대국이에요. 중간국가가 아니라 중견강대국이지요. 17~18세기 프랑스, 합스부르크, 이탈리아, 일본과 같은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역 경쟁뿐만 아니라 문화에서 한류, 외교안보에서, 그리고 정치에서 중견강대국이 됐어요. 클래식 음악도 한국이 세계에서 앞서가고 있고, 무용이나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우리 스스로가 좀 더 자각하고 거기에 걸맞은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은 우리의 국익만을 생각할 때를 넘었고, 이제 국경을 넘어 지구를 살린다든지 글로벌 리더국가로서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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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 진교농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수석합격을 하셨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말씀을 해주시죠?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낮에는 나무를 심고 밤에는 멘토링을 했어요. 그때 나온 질문이 지금과 비슷했는데,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겁 없이 하라’, ‘실패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한 한생이 저에게 ‘대학교 2~3학년 때 무엇을 했는가’를 묻더군요. 학과목 공부가 싫어 학점이 엉망이 됐지만, 그러면서도 나름 의미있는 세 가지 일을 했다고 했어요. 한 가지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이한기 선생이 도전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몇 달간 밤을 지새우며 한‧일간의 평화선이 국제법으로 정당한가를 연구했어요. 또 한 가지는 재경하동학우회 회장으로 출마해 ‘하우지’라는 회지를 창간한다고 공약을 해 당선됐어요. 그런데 당선된 후 원고를 모으고 출판할 돈을 모아야 하는 등 공약이 잘못된 것을 알았지요. 하지만 공약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이니까 회지를 발간했어요.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3‧15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됐는데, 학생 몇 명이 창경원에서 비밀리에 모여 반대 데모를 했어요. 특히 4‧19혁명 때 대광고생들이 거리로 나설 때 지금 우리는 공부할 때가 아니라며 서울대생을 끌고 데모에 참가했어요. 젊은이는 실패해도 좋으니까 무엇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맘껏 해볼 필요가 있어요.”

■ 권병현 전 주중 한국대사는 누구?


한중수교 막후 주역…격동의 한국사 속 37년 외교 최전선 지켜


1938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권병현 전 대사는 진교농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권 전 대사는 1965년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근무를 시작해 동북아2과 과장, 주일 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아주국 국장, 주 미얀마 대사, 외무부 외교정책기획실장 등을 거쳐 제4대 주중 대사 등을 지내는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 한가운데서 37년간 외교 일선을 지켰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을 창립, 중국 네이멍구 사막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지속 가능한 토지관리 초대챔피언이자 녹색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흥기미래창조과학부글로벌창업정책포럼상임의장(왼쪽)과권병현전주중대사/사진=김태훈기자이미지 확대보기
▲김흥기미래창조과학부글로벌창업정책포럼상임의장(왼쪽)과권병현전주중대사/사진=김태훈기자

■ 파워 인터뷰 진행자 김흥기 상임의장 소개


김흥기 상임의장은 중국과학원 지식재산최고위과정 원장, 모스크바 국립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KAIST 겸직교수 및 대통령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 공동대표와 강원미래발전21 상임의장 등의 활동으로 후학 양성과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교육기회 차별해소를 통해 누구나 생각, 태도와 행동을 바꾸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우리사회에 전파하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2012년을 빛낸 대한민국 10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공동수상)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대한민국 성공대상과 대한민국 나눔실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