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서 부린 짐을 집안으로 넣고 있던 그 날 오후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의식이 돌아왔다는 답변을 듣곤 마저 일한 뒤에 차를 몰고 신문사로 복귀하던 중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고 빈소로 방향을 돌렸다. 사회장으로 치러진 5일의 장례 기간 내내 새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면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다.
추도 기사 첫 문장을 ‘세상 최고의 독종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썼다. 조상이 흘린 피의 대가로 받은 막대한 돈(대일청구권자금)을 들여 짓는 국내 첫 고로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가혹하리만치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덕분에 포스코라는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 그때를 되돌아봤을 때 ‘꼭 그렇게 독하게 했어야 했을까’라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나 보다. 떠나기 석 달여 전 19년 만에 만난 ‘창업 동지’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첫인사를 한 그는 환영사를 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저의 인생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큰 뜻에 도전한 세월이 가장 보람차고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지난 13일은 청암(靑巖) 박태준 명예회장이 별세한 지 10주기였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포스코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올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두며 기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오너 창업자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열정을 보였던 청암처럼, 포스코맨이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걸어갔기에 이뤄낸 값진 성과다. 이제 포스코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다. 내년부터 본격화할 포스코의 미래에 기대를 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