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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독종’을 자처했던 청암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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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독종’을 자처했던 청암 박태준

2011년 12월 13일은 기자 생활 중 두 번째로 월차 휴가를 내고 이사를 했던 날이었다.

트럭에서 부린 짐을 집안으로 넣고 있던 그 날 오후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의식이 돌아왔다는 답변을 듣곤 마저 일한 뒤에 차를 몰고 신문사로 복귀하던 중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고 빈소로 방향을 돌렸다. 사회장으로 치러진 5일의 장례 기간 내내 새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면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다.
추도 기사 첫 문장을 ‘세상 최고의 독종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썼다. 조상이 흘린 피의 대가로 받은 막대한 돈(대일청구권자금)을 들여 짓는 국내 첫 고로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가혹하리만치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덕분에 포스코라는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 그때를 되돌아봤을 때 ‘꼭 그렇게 독하게 했어야 했을까’라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나 보다. 떠나기 석 달여 전 19년 만에 만난 ‘창업 동지’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첫인사를 한 그는 환영사를 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저의 인생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큰 뜻에 도전한 세월이 가장 보람차고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생전 고인과 깊은 교류를 나눴던 조정래 소설가는 고인의 성에 ‘성스러운’이라는 인도어인 ‘마하트마(Mahatma)’를 붙여 ‘마하트마 박’이라고 칭하고, 간디와 동급이라고 했다. 그는 “간디가 죽고 난 뒤 인도인들은 간디가 걸어갔던 길을 걸으려 하지 않고 있다. 힘들고 외롭기 때문”이라며 “아마 한국인도 마하트마 박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영원한 사표이자 보물이다”고 전했다.

지난 13일은 청암(靑巖) 박태준 명예회장이 별세한 지 10주기였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포스코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올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두며 기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오너 창업자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열정을 보였던 청암처럼, 포스코맨이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걸어갔기에 이뤄낸 값진 성과다. 이제 포스코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다. 내년부터 본격화할 포스코의 미래에 기대를 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