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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삼나무 숲에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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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삼나무 숲에 부는 바람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제주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풍경 중 하나가 어디를 가나 쉽게 마주치는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이다. 마치 대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올곧게 쭉쭉 뻗은 직립한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숲을 이룬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그 나무 사이를 거닐면 공기도 훨씬 서늘하고 상쾌하여 코가 뻥 뚫리는 것만 같다. 울창한 삼나무 숲은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삼림욕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너무 높이 자라서 햇빛을 막고 다른 식물에 해로운 독성물질을 발산하는 특성 때문에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아 종(種) 다양성을 해치고 봄철에 날리는 꽃가루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아토피 피부염, 천식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삼나무는 제주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지만 제주의 고유 수종은 아니다. 삼나무는 측백나무목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겉씨식물로 일본이 원산이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나와 위로 또는 수평으로 퍼지고, 높이 30~40m까지 자란다. 나무껍질은 적갈색 또는 암적갈색으로 세로로 가늘고 길게 갈라져 벗겨진다. 잎은 바늘 모양이며 길이 12~25㎜, 끝이 뾰족하다. 주로 관상용·조림용으로 심는데 목재로도 쓸모가 많은 나무다. 목질 자체가 무르고 가벼운데다 향이 좋아 가공하기 쉬운 실내 건축에 좋은 재료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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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라산에서 표고버섯 등 임산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벌채와 수탈이 이뤄졌다. 그렇게 제주의 산림이 수난을 겪으면서 황폐해지자 일본에서 삼나무를 들여온 것이다. 일본이 원산지이지만 온난하고 습한 기후 덕분에 제주에서 더욱 잘 자랐다. 삼나무가 제주에 들어온 것은 1924년으로 제주시 월평동 27ha에 심어진 것이 처음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리하는 한남시험연구림에 있는, 어른 3명이 안아야 손끝이 닿을 정도로 큰 삼나무들이 현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사람들은 삼나무를 가리켜 '쑥대낭'이라고 부른다. '쑥쑥 크는 나무'란 의미의 제주 말이다. 제주에서 삼나무를 많이 식재한 것은 빨리 자라는 속성수란 이유 외에도 감귤 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한 1970∼1980년대에는 감귤 과수원 방풍림으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돌로 담을 쌓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바람을 막아주는 효과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목장과 목장 사이 경계수나 가로수로도 한때 각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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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나무는 나무랄 게 없다. 비록 삼나무가 일본이 원산지라도, 봄철 꽃가루가 비염을 일으킨다고 해도 나무를 탓해서는 안 된다. 나무는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헐벗은 산야를 초록으로 채우며 가득 들어선 삼나무들이 이룬 숲은 한낮에도 컴컴하다. 삼나무 숲은 빛이 들지 않아 다른 식물들이 살아가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잘못일 뿐 삼나무는 죄가 없다. 어느 곳이건 한 번 자리 잡으면 생이 다할 때까지 제자리를 지키는 게 나무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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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숲에 바람이 불면 쏴아~ 쏴아~ 파도 소리가 난다. 나무의 우듬지가 하늘을 쓸어내는 듯한 소리에 내 안에 쌓여 있던 잡념의 티끌들도 쓸려 나간 듯 머리가 맑아진다. 삼나무 숲에 들면 그곳이 어디이든 원시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삼나무 숲에 들면 인간 세계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신령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오늘도 삼나무 숲엔 바람이 분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