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오월은 봄의 끝자락이자 여름의 초입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봄의 끝자락을 일러 춘미(春尾)라고 했다. 이즈음에 생각나는 시가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曲江)’이란 시이다. 그중에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구절은 저무는 봄을 향한 아쉬움을 노래한 다음 구절이 아닐까 싶다.
一片花飛減卻春(일편화비감각춘) 꽃잎 하나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데
風飄萬點正愁人(풍표만점정수인) 바람에 만 조각 꽃잎 날리니 나를 몹시 시름 짓게 하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며 새삼 깨달은 것은 봄이 저문다고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란 사실이다. 꽃이 지는 건 서러운 일이지만 자연은 우리가 슬픔에 주저앉아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꽃이 진 자리를 촘촘히 메우며 짙어 오는 초록으로 바탕색을 채우며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천변의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키를 키우며 꽃잎 흩어진 대지에 초록 융단을 펼쳐놓으며 우리를 들판으로 불러낸다. 떨어지는 꽃잎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잠시 감상에 젖을 수는 있겠지만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쉬지 않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슬픔을 딛고, 절망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봄의 끝자락인 오월이 되었다고 꽃들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어디에서나 쉽게 꽃을 발견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보았던 꽃들의 이름만 적어도 노트 한 장은 너끈히 채울 수 있다. 가로변에 하얗게 피어난 이팝나무꽃을 비롯해 튤립, 수선화, 황매화, 라일락, 모란, 작약, 애기똥풀, 씀바귀꽃 등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다. 꽃의 아름다움은 단명함에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바람을 견디는 꽃잎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리디여린 꽃잎들이 바람을 견디는 이유는 단 하나,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벌·나비를 유혹하기 위함이다.
어렵사리 꽃가루받이를 끝낸 꽃들은 시들고, 꽃 진 자리엔 씨앗이 맺힌다. 씨앗들은 바람에 날려 어딘가에 떨어져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우고 다시 꽃을 피운다. 그 과정이 가치가 있는 것은 다시 꽃 피울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오월의 자연 속으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그 신비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사랑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