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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헝다그룹 쉬자인(許家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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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헝다그룹 쉬자인(許家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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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자인 헝다 창업주

헝다 그룹 쉬자인(許家印)이 중국 공안당국에 전격 체포됐다.
헝다는 홍콩 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쉬 회장이 법률 위반 범죄 혐의로 법에 따라 강제 조치됐다”면서 “유관 부문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말하는 강제 조치란 사회 치안과 수사 및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유지하기 위해 법에 따라 피고인, 현행범 또는 주요 용의자들의 신체 자유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것이다.

쉬자인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중국 부동산 위기를 야기한 헝다(에버그란데)그룹의 창업주이다. 앞서 뉴욕증시에서는 쉬자인 회장이 모처에 구금돼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이 보도가 공시로 사실 확인이 된 셈이다
광둥성 선전시 공안국은 헝다금융재부관리(에버그란데 웰스)의 일부 직원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디폴트 상태에 놓인 헝다가 이제 사법처리 국면으로 새롭게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쉬자인(許家印)은 중국 허난성 주구시 타이캉 현 출신으로 농민 가정에서 자랐다. 저가형 소형 주택을 기본으로 한 부동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CEO로 자수성가하였다. 쉬자인이 창립한 헝다그룹은 한때 중국 굴지의 부동산 업체가 되었다. 쉬 회장은 2013년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중국 최고의 자선가 1위에 뽑히기도 했다.

홍콩 증권거래소는 헝다와 자회사인 헝다 신에너지차, 헝다 부동산 서비스의 주식 거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헝다의 홍콩거래소 주식 거래 중단은 지난해 3월 거래가 중단됐다 17개월 만에 재개된 지 한 달 만이다. 주식 거래 중단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뉴욕증시에서는 쉬자인 회장이 당국에 의해 강제 조치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헝다는 중국 당국이 2020년 투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대대적인 규제에 나서면서 직격탄을 맞고 침체에 빠졌다. 그리고는 2021년 12월 디폴트 상태가 됐다. 헝다는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라는 오명을 얻었다. 2017년 아시아 부자 2위까지 올랐던 쉬 회장의 재산은 급전직하 했다.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를 이끄는 쉬자인 회장의 재산은 93%나 증발한 상태이다. 쉬자인 회장의 재산은 부동산 경기 하락과 함께 시작된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헝다가 디폴트에 빠지면서 급격하게 감소했다.쉬자인 회장은 회사의 위기와 함께 정치적인 영향력도 상실했다. 그는 정책 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인민정협)에 지난 2008년부터 참여했다. 2013년부터는 전국위원회 상무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례 회의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인민정협 위원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쉬자인은 1958년 중국 허난성 저우커우의 변두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후 1년이 지날 무렵 쉬자인의 어머니는 패혈증에 걸려 사망했다. 이후 쉬자인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할머니는 일용직 자리조차 구하지 못하고 석탄과 사과를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쉬자인은 문화 대혁명이 끝나면서 우한 과학기술대학 야금 학과에 입학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쉬자인은 1982년 철강회사에 입사했다. 10년 동안 철강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일 했다. 정부에서 서 수여하는 6개 부분의 상을 수상했다. 폐기물 매각 사건에 연루되어 사직하게 된다. 쉬자인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부에 있는 도시 선전으로 이동했다. 선전 중단라는 회사에 입사해 짧은시간 안에 주임으로 승진하게 된다.
쉬자인 헝다 기업의 설립과 성공

쉬자인은 선전중다 그룹에서 광저우시의 부동산 시장 개척을 맡았다. "주 다오 화원"이라는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성공적인 영업실적으로 회사에 2억 위안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큰 성과를 얻은 쉬자인는 그룹의 회장에게 10만 위안의 연봉을 달라고 요청하지만 거절단했다. 결국 쉬자인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 "주 다오 화원"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가 바로 "헝다 부동산"입니다. 헝다의 사업 전략은 "작은 면적, 낮은 가격"이었다. 은행을 설득해 대출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광저우의 외곽에 농약공장 부지를 구입해 "진 비화원"이라는 주택단지를 만들었다. 진 비화원은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이 성공으로 헝다은 일약 메이저 기업으로 올라섰다. 1999년 자립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헝다 그룹은 광저우 부동산 기업 중 7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사업을 광저우를 넘어 중국 전역으로 확대한 계획을 세웠다. 작은 면적, 낮은 가격의 정책에서 규모와 품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중국 3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