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한국은 수소연료전지차와 액화수소 생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용화를 이뤄낸 경험이 있다. 인천에서는 연간 3만 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가 준공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흐름은 더디다.
2025년 7월 기준 국내 누적 수소전기차 등록 대수는 4만 대에 육박하지만, 충전 인프라는 430기 수준에 머물러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정책의 일관성 약화, 인프라와 기술 격차, 시장 신뢰 저하가 겹치며 속도를 늦추고 있다. 방향은 제시되어 있으나 실행이 더딘 것이 최대의 문제이다.
이날 토론회는 여덟 개 분과로 나뉘어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다. ‘왜 수소인가’ 분과는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저장체계 표준화와 공공·산업·교통 분야의 수소 사용 의무화를 주장했다. 국내외 동향 분과는 ‘수소산업진흥법’ 제정과 전담부처 설치를, 국가 정책 분과는 보조금 및 탄소차액계약(CCfD) 도입과 국제 표준 연계를 강조했다.
최종 권고문은 다섯 가지 과제에 집중한다. 첫째, 국가 컨트롤타워 설치와 법·제도 정비이다. ‘수소산업진흥법’ 제정과 에너지기본법 내 독립 항목 신설이 필요하다. 둘째, 발전·공공부문 수소 사용 의무화와 대형 모빌리티 중심 보급, Off-taker 제도를 통한 장기 구매계약 확보이다. 셋째, 연료전지 내구성 및 저장·운송 기술 고도화와 장기 R&D 지속이다. 넷째, 전국 500기 이상 충전소 조기 구축과 해상풍력·수전해 연계 단지 조성이다. 다섯째, 친환경 수소 인증제 강화와 CCUS 활성화, 전주기 안전검증 체계 확립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수소경제가 뿌리내리려면 지역 단위의 실질적 수요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산–저장–활용 기술은 갖추었으나 지역 수요가 약해 산업·외교 전략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요동친 것도 투자 불확실성을 키웠다. 국내 수소 가격은 8500~2만5000원/kg 구간으로 국제 경쟁력이 낮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가 필요하다. △전력·수소·ESS·스마트그리드 간 충돌을 해소하는 네거티브 규제와 규제 샌드박스 △중앙정부 중심에서 지역 산업단지·항만을 연계한 자급형 모델 △울산(청정수소·암모니아)–경주(원자력 청정수소)–포항(대규모 산업수요) 청정수소 지역동맹 △지자체 전담부서 설치로 실행력 강화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 조성으로 밸류체인 고도화 △국제 표준화 참여와 H2Global·CfD 벤치마킹을 통해 6달러/kg(약 8000원/kg) 수준의 벤치마크 가격을 정책적으로 설정하는 일이다.
국제 경쟁은 이미 가속 단계이다. 유럽연합은 H2Global로 장기 계약시장을 제도화했고, 일본은 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렸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 생산국을 자임하며 초대형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고, 미국은 IRA 45V 세액공제로 투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소경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정책 일관성과 제도 기반, 강제적 수요 창출, 기술 경쟁력, 인프라, 안전과 환경 신뢰가 균형을 이룰 때 한국은 다시 선도국으로 설 수 있다. “Begin Again”은 한 때 유행하였던 방송 프로그램의 타이틀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건 흉내 내기가 아니다. 수소경제에 대한 신뢰의 회복을 선포하고 속도전에 임할 거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몇 년전 수소경제의 깃발이 높이 들리던 날 기업과 시민은 환호했고 세계는 한국을 주목했다. 그때는 전 세계가 막 출발선에 서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레이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이여, 우리는 언제까지 자세를 고쳐 잡으며 트랙이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는 한탄만 하고 있을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