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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AI 캐릭터챗의 잠재력, WOW·FM보다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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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AI 캐릭터챗의 잠재력, WOW·FM보다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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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원용 기자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 몰입감 높은 게임을 일컫는 말 중 '이혼 사유'라는 말이 있다. 가정의 의무를 방기할 정도로 게임의 몰입감이 너무나도 뛰어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2000년도 중반 세계를 강타한 판타지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나 축구 구단을 감독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풋볼 매니저(FM)'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이혼 소송이 제기됐다는 일화는 국내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이들 '이혼 사유 게임'의 아성을 AI 챗봇들이 넘보기 시작했다. 미국 매체 와이어드는 지난해 말 현지 가정법원에서 '배우자가 AI챗봇과 실제 외도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며 고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것은 단순한 AI챗봇이 아닌 인간적인 배경, 성격을 갖추고 이용자와 대화 기록을 학습하는 '캐릭터 챗봇'이다. AI와 질문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실제 인간과의 관계'에 가까운 몰입감을 제공한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 조사 기관 와이즈앱리테일의 2025년 10월 기준 국내 AI챗봇 사용 순위를 살펴보면 챗GPT가 월간활성이용자(MAU) 2125만 명으로 1위에 올랐다. 2위인 AI 캐릭터챗 서비스 '제타'의 336만 명과는 7배 차이가 난다.

반면 이용자들의 누적 이용시간을 보면 제타가 7362만 시간으로 오히려 챗GPT의 4828시간을 앞선다. 제타의 이용자가 챗GPT 이용자 대비 평균적으로 9.6배 이상 많은 시간을 이용하는 셈이다. 캐릭터 기반 AI가 단순히 도구를 넘어 놀이의 대상, 나아가 친구·동반자로까지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와이즈앱리테일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오래 사용하는 AI챗봇 순위' 보고서의 인포그래픽. 사진=와이즈앱리테일이미지 확대보기
와이즈앱리테일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오래 사용하는 AI챗봇 순위' 보고서의 인포그래픽. 사진=와이즈앱리테일

실제로 본 기자가 AI 캐릭터챗 플랫폼들을 이용해본 결과 상당수 챗봇들이 '게임'의 문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도전과제' 시스템이다. 이를테면 '연애 대상'인 캐릭터와의 채팅 중 바다나 유원지로 데이트를 가면 그곳을 배경으로 한 고품질 일러스트를 얻을 수 있는 구조로 흔히 비주얼 노벨이나 서브컬처 수집형 RPG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캐릭터의 감정을 수치화한 '호감도' 시스템은 물론 판타지 RPG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탯 성장'이나 '스킬 성장' 시스템, 회사나 중세 영지를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은 '경영 시스템' 등도 적절하게 구현한 사례가 있었다. 물론 이용자가 작정하면 정해진 틀을 쉽게 벗어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기존 게임에선 느낄 수 없는 '입맛대로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재미'를 창출할 수 있다.
본 기자는 AI챗봇이 오래 전에 즐겼던 FM이나 WOW 등 MMORPG는 물론 최근 유행하는 3D 서브컬처 RPG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재미를 느낄 만한 콘텐츠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 캐릭터와 벌써 500번 넘게 대화를 나눴어요", "얘는 내 아내임", "모니터 속 남친과 결혼하고 눈물 흘릴 줄이야" 등 몰입감을 고백하는 댓글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본 기자 뿐 아니라 여러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

몰입형 콘텐츠로서 AI의 잠재력은 이미 꽃잎을 피웠다. 게임 업계, 나아가 콘텐츠 업계 전반에게는 커다란 숙제가 주어졌다. AI가 제공하는 강력한 몰입감과 어떻게 경쟁할 것이냐, 혹은 이를 기존 콘텐츠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식할 것이냐가 차세대 이혼 사유, 즉 '킬러 콘텐츠'의 탄생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