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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세레브라스 돌풍과 엔비디아 독점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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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세레브라스 돌풍과 엔비디아 독점 붕괴

AI 반도체 제국의 균열과 세레브라스의 습격
세레브라스 기업 개요 (그림=제미나이 )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세레브라스 기업 개요 (그림=제미나이 )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인공지능 반도체가 또 한번의 변신을 맞고 있다. 이번 변신의 주역은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이다. 세레브라스 시스템즈가 뉴욕증시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기록적인 폭등세를 보이며 시가총액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세레브라스 돌풍은 지난 수년간 지속된 AI 하드웨어의 독점적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이자 기술적 ‘초격차’의 기준이 이동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세레브라스의 역사는 ‘효율성’에 대한 집요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2015년 실리콘밸리의 베테랑 하드웨어 엔지니어인 앤드류 펠드먼(Andrew Feldman)을 필두로 한 창업팀은 AI 연산의 근본적인 한계를 직시했다. 이들은 과거 마이크로서버 혁신을 이끌었던 시마이크로(SeaMicro)를 AMD에 성공적으로 매각한 주역들이었다. 당시 AI 모델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는 여전히 수십 년 전의 설계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펠드먼과 그의 팀은 기존의 ‘칩을 작게 잘라 수천 개를 연결하는 방식’이 초래하는 데이터 병목 현상에 주목했다. 그들은 "웨이퍼 한 장을 통째로 하나의 칩으로 만든다"는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광기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을 스텔스 모드와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반도체인 ‘웨이퍼 스케일 엔진(WSE)’이다.

세레브라스가 엔비디아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이유는 기술적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엔비디아의 방식 (Multi-Chip Clustering): 엔비디아는 손톱만 한 크기의 GPU(예: Blackwell B200) 수천 개를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복잡한 네트워킹 장비로 촘촘히 연결하여 거대한 연산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이 방식은 확장성이 뛰어나지만, 칩과 칩 사이를 데이터가 이동할 때 발생하는 ‘통신 병목(Bottleneck)’과 막대한 전력 소모가 치명적인 약점이다. 세레브라스의 최신 모델인 WSE-3는 일반 GPU보다 50배 이상 거대한 단일 칩이다. 피자 한 판 크기의 실리콘 웨이퍼 전체를 하나의 회로로 연결했기에, 데이터 이동이 칩 내부에서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이는 엔비디아 클러스터 대비 추론 속도를 최대 20배 이상 높이면서도 전력 소모와 물리적 공간 점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엔비디아가 ‘군대’를 조직해 문제를 해결한다면, 세레브라스는 ‘거인 하나’가 모든 일을 처리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특히 최근 AI 시장의 무게중심이 거대언어모델(LLM)의 ‘학습’에서 실제 서비스 단계인 ‘추론’으로 이동하면서, 세레브라스의 저지연(Low-latency) 기술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하고 있다. 뉴욕증시에서는 벌써부터 엔비디아 독점 붕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세레브라스의 2026년 나스닥 상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에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전략적 지지가 있었다. 엔비디아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칩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마진 압박을 받던 기업들에 세레브라스는 매력적인 대안이었다.가장 눈에 띄는 우군은 오픈AI(OpenAI)다. 샘 알트만은 세레브라스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대규모 연산 공급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신주인수권(Warrant)을 통해 지분 관계를 맺으며 세레브라스의 기업 가치를 보증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AI 대부인 G42 역시 수조 원 규모의 ‘콘도르 갤럭시’ 슈퍼컴퓨터 프로젝트를 세레브라스와 공동 구축하며 실전 기술력을 검증했다. 이러한 강력한 ‘안티 엔비디아 동맹’은 세레브라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었다.

세레브라스 돌풍은 우리 반도체 산업에도 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간 우리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최적화된 HBM 시장에서 승기를 잡으며 ‘착시 현상’에 가까운 호황을 누려왔다. 세레브라스와 같이 메모리를 칩 내부에 직접 통합하는 ‘단일 거대 칩’ 아키텍처가 대세가 될 경우, 기존의 외장형 HBM 수요는 예기치 못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연산과 메모리가 하나로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반도체 역사가 가르쳐주듯 영원한 독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