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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타오의 법칙 vs 무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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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타오의 법칙 vs 무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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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무어의 장벽을 넘어선 시간의 혁명: 중국 ‘타오의 법칙’이 던진 엄중한 경고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곧 물리적 한계에 도전해 온 인간 오만의 기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실리콘 밸리와 동아시아의 미세공정 공장들을 지배했던 절대적 율법은 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가 제창한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었다. "2년마다 마이크로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 이 마법 같은 공식은 디지털 혁명의 엔진이었다 기술 관료들에게는 절대적인 나침반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무어의 법칙은 임계점에 봉착했다. 원자 크기 수준인 나노미터($text{nm}$) 단위의 극미세 세계로 진입할수록 양자 역학적 터널링 현상으로 인한 전류 누설, 발열,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장비 비용이라는 거대한 물리적·경제적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선단 공정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에 매달려야만 하는 미세화 경쟁은, 어쩌면 벼랑 끝을 향해 달리는 치킨게임과도 같았다.

이러한 교착 상태 속에서,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국 화웨이(Huawei)가 던진 한마디는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판도를 흔드는 거대한 충격파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타오의 법칙($tau$의 법칙)’이다. 이는 서방의 공급망 차단이라는 가혹한 유배지에서 중국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생존 교본이자, 무어의 법칙이 그려놓은 공간적 한계를 시간의 축으로 돌파하겠다는 선전포고이다. 공간의 미세화에서 시간의 축소로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HiSilicon)의 허팅보 총재가 공개한 타오의 법칙은 반도체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완전히 뒤바꾼다.

그리스 문자 타오($tau$)는 물리학과 전자공학에서 ‘시간상수(Time Constant)’를 뜻한다. 시스템 내부에서 신호가 전달되거나 상태가 변화하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반응 시간을 의미한다.기존의 무어의 법칙이 트랜지스터의 물리적 크기를 줄여 한정된 실리콘 웨이퍼라는 ‘공간’에 얼마나 많은 소자를 빽빽하게 집어넣을 것인가 즉 Spatial Scaling에 집착했다면, 타오의 법칙은 소자 간의 신호 전달 시간을 단축하여 연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간’의 최적화 즉 Temporal Scaling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이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꾀한 배경에는 미국의 집요한 제재가 존재한다. 미국은 ASML의 하이 나오(High-NA) EUV 장비는 물론, 구형 EUV 및 심자외선(DUV) 장비 일부까지 중국으로 수입되는 길을 원천 봉쇄했다. 빛을 이용하여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노광장비가 없다는 것은 선단 공정으로의 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선고와 같았다. 이 위기에서 화웨이는 장비의 한계를 설계와 구조의 혁신으로 정면 돌파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들이 내세운 핵심 무기는 ‘로직폴딩(Logic Folding)’ 기술과 3차원 전자 시스템 구조다. 회로의 물리적 선폭을 3나노, 2나노로 깎아내려가지 않더라도, 신호가 오가는 길목을 입체적으로 접고 배치하여 전류가 이동하는 절대적 거리를 단축시키는 방식이다. 즉, 도로의 폭을 좁히는 대신(미세공정), 입체 교차로를 만들고 지름길을 뚫어(설계 혁신)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 자체를 줄이겠다는 발상이다.

화웨이는 이미 이 법칙에 기반한 381종의 반도체를 설계·양산해 왔다. 올가을 이를 전면 적용한 신형 치린(Kirin) 칩을 선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은 결코 허장성세로만 치부할 수 없는 구체성을 띠고 있다.3. 2031년 1.4나노의 격전: 추격자에서 선도자로의 도약타오의 법칙이 지닌 가장 무서운 점은 그들이 제시한 시간표에 있다. 화웨이는 설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5년 뒤인 2031년까지 1.4나노 공정 수준의 트랜지스터 밀도를 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메모리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TSMC와 삼성전자의 1.4나노 양산 계획 시점은 각각 2028년 하반기와 2029년경으로 점쳐진다.겉보기에는 중국이 여전히 2~3년 뒤처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서방의 기술과 장비 생태계에서 완전히 고립된 채, 독자적인 공급망과 설계 자산만으로 1.4나노급 밀도를 구현하겠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기술적 경이이자 위협이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EUV 장비 수십 대를 들여놓아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미세화의 고지를, 중국은 고난도의 우회 전술과 수학적 설계 모델링으로 도달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이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서방 반도체 업계가 공유하던 오랜 통념, 즉 "EUV 없이는 5나노 이하의 첨단 칩을 만들 수 없다"는 명제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이는 기술 격차의 축소를 넘어, 서방이 구축해 놓은 반도체 진입 장벽의 유효성 자체가 상실됨을 의미한다.

화웨이의 발표 직후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의 주가가 폭등했다. 시장이 이미 중국 반도체 공급망의 자립 가능성과 그 파괴력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검증의 도마 위에 오른 중국 기술물론 글로벌 반도체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화웨이의 발표를 향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화웨이가 주장하는 ‘시간 축소 이론’이 완전히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엔비디아(NVIDIA), AMD, 인텔 등 글로벌 팹리스 및 종합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무어의 법칙 이후(Post-Moore) 시대를 대비해 왔다.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칩을 하나로 묶는 ‘칩렛(Chiplet)’ 기술,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3D 패키징’, 그리고 하드웨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소프트웨어 및 AI 알고리즘 최적화’ 등이 그것이다.

상하이재경대학의 후옌핑 교수를 비롯한 일각의 분석가들이 "타오의 법칙이 독창적인 신개념인지, 아니면 업계 전반이 이미 걸어가고 있는 고도화된 후공정(Advanced Packaging) 및 설계 최적화 기술에 중국식 수사를 입힌 것인지 검증해야 한다"고 꼬집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프트웨어적 최적화와 후공정 결합을 통한 성능 향상은 초기에는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물리적 소자 밀도의 한계를 완벽히 대체하기에는 장기적으로 발열과 수율(양품 비율) 통제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타오의 법칙이 기존 서방 기술의 변형이나 조합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이 중국 내부의 거대한 내수 시장 및 국가적 자본과 결합할 때 발휘될 파괴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중국은 기술의 순수성을 증명하려는 학자가 아니다. 미국의 제재라는 질식할 것 같은 포위망 속에서 ‘작동하는 첨단 칩’을 만들어내야 하는 절박한 생존자다. 허팅보 총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직접 공개 석상에 나서 "올해 겨울 전 업계를 놀라게 할 결과물을 공개하겠다"고 단언한 것은, 이미 실험실 단계를 넘어 상용화의 가시권에 들어온 기술적 실체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중국 반도체의 발전 속도는 무섭다는 표현을 넘어 가히 경외감과 공포를 동시에 자아낸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이 아무리 자본을 쏟아부어도 핵심 장비가 없으면 결국 구형(Legacy) 공정에 머물 것"이라는 안일한 낙관론에 기대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오의 법칙’은 장비의 부재라는 결핍이 어떻게 설계의 기적과 구조적 혁신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미세공정의 나노 숫자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서방의 장비 공급망에 안주하며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선에서 미어터지는 싸움을 지속하는 동안, 중국은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시간의 축소라는 화웨이의 접근법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모리 반도체의 압도적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로직 칩과의 입체적 결합을 도모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나 PIM(지능형 메모리) 분야에서, 우리 역시 설계와 패러다임의 혁신을 극대화해야 한다. 중국의 ‘타오의 법칙’이 던진 경고를 단순한 정치적 수사나 기술적 과장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가 쥐고 있는 반도체 주권의 모래성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공간을 지배했던 무어의 법칙의 시대가 저물고, 시간을 지배하려는 타오의 법칙이 다가오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체 대전환의 서막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