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정훈의 프롭테크'썰'] '창고'의 시대는 끝났다, 물류 인프라의 시대가 시작됐다

글로벌이코노믹

[이정훈의 프롭테크'썰'] '창고'의 시대는 끝났다, 물류 인프라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정훈 알스퀘어 물류사업본부장
이정훈 알스퀘어 물류사업본부장이미지 확대보기
이정훈 알스퀘어 물류사업본부장
요즘 물류센터 시장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새로 지어지는 창고가 아니라 비어 있던 창고가 채워지는 모습이다.

2~3년 전만 해도 시장의 화두는 공급이었다. 전국 곳곳에 대형 물류센터가 들어서고, 수도권에는 유례없는 규모의 신규 자산이 쏟아졌다. 공실은 늘고, 임대인들은 임차인 확보를 위해 렌트프리와 각종 지원 조건을 경쟁하듯이 내놓았다. 시장은 임차인 우위였다.

그러나 최근 현장에서 마주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공급이 줄어들자 공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과 공사비 상승, 인허가 감소가 이어지면서 신규 공급이 급감했다. 그동안 결정을 미루던 화주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지가 우수하고 스펙이 뛰어난 물류센터부터 빠르게 임차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시장 회복으로만 해석하면 중요한 변화를 놓치게 된다. 물류센터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공실률이 오르내리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류센터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물류센터를 부동산으로 평가했다. 위치, 규모, 임대료가 판단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화주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다르다.

'이 물류센터가 우리의 공급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가.'

결국 물류센터의 경쟁력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물류 네트워크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이 변화는 시장 곳곳에서 확인된다. 최근 수도권 동남권과 중앙권에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은 단순한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다. 물류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비용은 임대료가 아니라 수송비와 인건비다. 소비지와 가깝고 교통망이 우수한 지역으로 수요가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외곽이나 지방권 물류센터는 보관 기능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또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특화다.
냉장·냉동 물류, 반도체 부품 보관, 바이오 산업 지원, 항만 연계 수출입 물류, 도심형 즉시배송 물류 등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물류센터들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남는 물류센터는 가장 큰 창고가 아니라 가장 필요한 창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산업이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자산만이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앞으로 물류센터 시장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보인다. 바로 전력이다.

자동화 설비 확대와 로봇 활용 증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으로 물류센터는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라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운영 시설로 변모하고 있다. 충분한 전력 인프라를 갖춘 자산과 그러지 못한 자산 사이의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낡아빠진 시설이나 전력 여유가 부족한 물류센터는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자동화와 에너지 효율을 갖춘 자산이 새로운 물류 거점으로 자리 잡는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중요성도 커진다.

물류센터 시장은 오랫동안 정보 비대칭이 심한 시장이다. 실제 임대료와 공실 현황, 화주 동향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공급망이 복잡해질수록 경험과 감각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지역에서 수요가 발생하는지, 어떤 산업이 성장하는지, 어떤 자산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데이터로 분석해야 한다. 투자자도, 임대인도, 화주도 결국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물류센터 시장은 단순한 부동산 경기 순환의 한 국면을 지나는 것이 아니다. 창고 중심 시대에서 공급망 중심 시대로 이동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 물류센터가 부동산이었다면, 미래의 물류센터는 인프라다. 그리고 그 인프라는 도로와 입지뿐 아니라 데이터와 에너지, 자동화 기술 위에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물류 인프라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