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5 08:43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변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을 뭉턱뭉턱 내려놓는다. 거리에 색종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엽들을 보면 마치 축제가 끝난 행사장 같아 가슴 한편이 휑하다. 물든 잎을 내려놓고 허룩해진 나무들을 바라볼 때면 마치 큰 병이라도 앓고 난 환자 같아서 일견 안쓰러운 생각이 들다가도 잎이 진 뒤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벽암선사의 체로금풍(體露金風)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그동안 자신을 치장했던 무성한 잎들을 모두 내려놓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은 비움이자 처음으로 돌아감이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나목이 된 나무들을 보면 마치 죽은 듯2020.10.28 13:04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설악에서 처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하루에 200m씩 고도를 낮추며 산에서 내려온다는데 순식간에 천지간이 단풍 물결을 이룬 것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느티나무는 물든 이파리들을 색종이처럼 뿌려댄다. 가로변의 은행나무들은 금빛으로 물들어 눈부시고 단풍나무들은 꽃보다 붉은 빛을 자랑하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냥 집 안에 머물기엔 창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의 암봉 주위로 붉게 타는 단풍의 유혹이 강렬하다. 끝내 그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배낭을 꾸려 산을 올랐다. 바람에 쓸리는 느티나무 낙엽을 밟으며 산을 향해 걷는데 산길 들2020.10.21 10:28
숲 친구들과 양평 물소리길을 걸었다. ‘물소리길’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품고 있는 물의 고장 양평에서 조성한 물길 따라 걷기 좋은 길이다. 전철 경의중앙선의 역과 역을 걷고, 다시 마을로 들어가 골목과 숲을 걸을 수 있다. 도시의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답답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북한강에서 남한강으로, 다시 흑천(黑川)으로 이어지는 물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다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양수역에서 용문역까지 총 60여㎞에 이르는 물소리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총 6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3코스인 아신역에서 양평역에 이르는 11.3㎞의 ‘강변 이야기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2020.10.14 11:19
뜨락에 맨드라미 유난히 붉다. 티 하나 없이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을 볕 아래에선 세상 만물이 자신의 색을 더욱 또렷이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휴일 아침, 간단히 짐을 꾸려 가까운 숲을 찾았다. 찬 이슬 내린다는 한로가 지난 탓인지 숲 그늘에 들자 옷섶을 헤집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며칠 새 나무들도 수척해진 듯하고 산책로엔 낙엽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비록 꺼칠하긴 해도 아직은 숲의 나뭇잎들이 초록 일색인 것으로 보아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이 여기까지 이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짧은 코스의 둘레길을 걷고 오랜만에 연산군 묘 앞에 있는 방학동 은행나무를 찾아갔다.2020.10.07 12:48
“우리가/너를 잊었는가 싶을 때/들판은 휘영청, 초록 연두 노랑 갈색으로 흔들린다/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흔들린다/철길너머 낮은 언덕/그 너머 낮은 山 위의 무덤들이 덩달아/제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온 것들을/예쁘게 예쁘게 익혀가고 있는 계절…(박라연의 ’묘지가 아름다운 계절‘ 부분)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시의 제목을 보고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하필이면 ‘묘지가 아름다운 계절’이라니.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할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벌초를 하여 단정해진 봉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추석 명절을 쇠기 위해 읍내 오일장에 나가 말끔하게 이발을 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머리처럼 정말 묘2020.09.30 13:59
며칠 전 고향에 있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 때문에 올 추석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전갈이었다. 급기야 코로나19가 추석 귀향길마저 막아 버린 것이다. “얘들아 올 추석엔 내려오지 말거라. … 힘들게 내려와서 전 부치지 말고 용돈이나 두 배로 부쳐다오.” 정부에서 앞장서서 고향방문 자제를 홍보하고, 사람들 역시 혹시나 하는 염려 때문에 고향으로 향하던 마음을 접는 눈치다. 얼마 전 벌초를 할 때만 해도 별 이야기가 없어서 고향엘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마음 한 구석이 휑하다. 이문열의 중편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2020.09.23 14:28
쨍한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리다. 투명한 은빛 햇살은 눈이 부시고 나뭇잎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쎼시봉 가수 송창식이 곡을 붙여 부른 미당의 시 ‘푸르른 날’이란 시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불한불서(不寒不暑). 춥지도 덥지도 않은 요즘이야말로 일 년 중 가장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도 집 밖을 나설 때면 마스크부터 챙겨야 하는 요즘이다 보니 계절을 즐기기는커녕 외출도 꺼려지고 불요불급한 일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일도 가급적이면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직접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가끔 오랫동안 소식 없던 지인2020.09.16 10:41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두 눈에 가득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의 입에선 반사적으로 가을! 이란 말이 밤송이에서 알밤이 쏟아지듯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가을! 이란 독백을 하게 만들었다. 처서가 지나 꺼칠해진 가로수나 옷깃을 스치는 바람의 기운에서도 가을을 예감할 수는 있지만, 하늘을 보면 단박에 가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하늘로부터 온다.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암울하기까지 한 세상의 풍경과는 무관하게 하늘빛은 세잔느의 풍경화 속 하늘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가라 한 적 없고 오라 한 적 없어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여지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길고 궂2020.09.09 10:11
유난히 길었던 장마철 비구름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울감이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생이란 게 원래 조금은 우울한 것이라 해도 우울모드가 이처럼 오래 지속하기는 처음인 듯싶다. 어느 철학자가 말하길 모드 전환을 하기 위해선 세 가지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 세 가지는 다름 아닌 사람‧장소‧시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울 때라 사람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가장 쉬운 방법은 장소를 바꾸어 보는 것이다. 나는 기분전환을 위해 작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가까운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진화 기간에 99.5%를 자연환경에서 보낸 우리 인간에겐 바이오필리2020.09.02 13:28
한층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계획에도 없던 방콕 여행 중이다. 잠시 수그러드는가 싶던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그야말로 세상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란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쉬지 않고 날아드는 코로나 안전문자로 휴대폰이 연신 몸살을 앓는다. 탁자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연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다가 문득 배롱나무 생각이 났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았음에도 배롱나무는 여전히 가지마다 꽃을 피우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롱나무는 수피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나무다. 마치 정성들여 콩댐을 한 장판처럼 반질거린다. 껍질은 얇게 벗겨지면서 흰색 무늬가 생긴2020.08.26 11:03
모기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다. 모처럼 맑은 하늘을 보니 따가운 햇살마저도 정겹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너머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흰 뭉게구름을 보면 비에 젖어 살았던 지난 여름의 일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서가 지나면 햇빛도 햇빛이지만 물빛도 달라지고 다가서는 산 빛도 달라진다. 대숲이 빽빽해도 흐르는 물은 방해받지 않고, 산이 높아도 나는 구름은 거리끼지 않는다(竹密不妨流水過(죽밀부방유수과) 山高豈碍白雲飛(산고개애백운비)는 경봉스님의 선시처럼 제아무리 세상이 어수선해도 시절의 오고 감을 막지는 못한다. 여름과 가을이 갈마드는 24절기 중의 하나인 처서 무렵이 되면 세2020.08.12 09:26
아파트 화단에 보랏빛 꽃을 피운 비비추들이 함초롬히 비를 맞고 있다. 연일 전국을 휩쓰는 폭우로 인해 여기저기 산사태로 길이 끊기고 물난리가 났건만 꽃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에 젖어서도 그저 환하게 웃고만 있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처럼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에 몸도 마음도 흥건히 젖어서 좀처럼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는 요즘 꽃을 보는 일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엔 재라도 남지만 홍수가 지나간 자리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요즘이다. 매 시간 보도되는 뉴스 화면엔 붉덩물만 넘실거린다. 유난히 긴 장마로 마치 온 나라가 물2020.08.05 09:47
태양의 계절 8월이다. ‘7말8초’라 불리는 7월 하순에서 8월 초순은 여름휴가의 절정기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에는 이 맘 때쯤이면 늘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다. 해마다 속초의 한 콘도를 예약하여 하루는 바닷가에서, 하루는 산속의 계곡에서 아이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올해의 8월은 폭우와 함께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떠나는 일도 쉽지 않지만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서 산사태로 가옥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기고, 농경지가 침수되어 막대한 수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꼬리를 물고 있으니 휴가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매일 걷던 숲길 산책도 당분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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