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14:37
2020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는 자신을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하며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며 겸손을 모르던 인간이 진화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확인한 한해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고 거리두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 속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좀 더 자연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 년은 사람에 등 돌리는 대신 날마다 숲을 향해 걷던 해이기도 했다. 아파트 뜰에 가지 가득 선홍빛 열매를 달고 선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잡아끈2020.12.23 13:49
성탄절이 코앞이건만 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흉흉한 소문만 가득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가장 그립지만 가장 두려운 게 사람이 되어 버린 세태 속에서 간간히 나를 숨 쉬게 하는 것은 숲길 산책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따금 안부를 전해오는 사람 중엔 꽃도 없는 이 추운 겨울엔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묻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올 한 해는 사람들의 거리를 피해서 숲으로만 떠돌았던 것 같다. 찬바람만이 거리를 배회하는 겨울밤, 누군가가 그리워지면 나는 종종 자작나무를 생각하곤 한다. 눈빛을 닮은 새하얀 줄기에 굽은 데 없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늘씬한 자태로 언제든 우2020.12.16 10:46
온통 뿌연 하늘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의 암봉들이 미세먼지에 가려 윤곽만 흐릿하다.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던 전통적 겨울 날씨인 '삼한사온(三寒四溫)' 은 이젠 옛말이 되었다. 대신 미세먼지를 뜻하는 '삼한사미( 三寒四微)'가 일상화된 듯 추위가 누그러지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댄다. 머리카락 굵기의 20분의 1수준인 초미세먼지는 기관지나 폐 등으로 들어가면 건강에 치명적이다. 이런 날은 되도록이면 외출을 삼가는 게 상책이지만 부득이 외출해야 한다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스크 착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런데도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를 찾아 나선 것은 오랜 거리두기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미2020.12.09 11:12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겨울'을 맞고 있다. 일찍 찾아든 추위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덩달아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거리두기 강화로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접어들면서 휘황한 불빛 속에 한창 흥청거려야 할 도시의 밤거리에도 찬바람만 휑하니 분다. 연말의 그 많았던 모임들도 취소되고 어쩌다 약속이 생겨도 마스크부터 챙겨야 하는 불편한 날들이 마냥 지속되고 있다. 인간은 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려워져 버린 세상이다 보니 올 겨울은 몸보다 마음이2020.12.02 11:00
첫눈보다 먼저 12월이 왔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 되면 세월의 물살도 여울져 흐르며 마음엔 알 수 없는 조급증이 인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12월이 되면 약속도 많고 모임도 많았다. 하지만 올겨울만큼은 유난히 춥고 고독한 겨울이 될 것 같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들불처럼 번져가는 코로나의 확산세가 걱정을 넘어 공포감마저 느낄 만큼 심상치 않다. 일 년 내내 마스크에 갇혀 지냈는데 영영 벗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약속이 사라져 버린 12월,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사람 만나는 일이 이젠 가장 두렵고 많은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마스크와 미2020.11.25 10:39
겨울비 지나간 뒤 나무들이 단출해졌다. 황금빛으로 물든 이파리를 자랑하던 은행나무도, 울긋불긋 물든 이파리를 무시로 뿌려대던 벚나무도 모든 잎을 내려놓고 한결같이 묵언수행 하는 수도자처럼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많던 이파리들을 남김없이 떨쳐내고 묵상에 잠긴 듯한 나무들을 보면 사소한 것에도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함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득 “겨울비 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 더욱 가난해지고 싶다. 온갖 소유의 얽힘에서 벗어나 내 본래의 모습을 통째로 드러내고 싶다.”고 한 법정스님의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오른다. 비에 젖은 낙엽들이 함부로 뒹구는 골목을 돌아 나오2020.11.18 10:57
마침내 그 나무 아래 도착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시 한 편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반칠환 시인의 시 ‘새해 첫날’이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뜬금없이 그 시가 생각난 것은 그 나무 한 그루 보려고 용문역에서 용문사까지 발바닥 아프게 걸어온 나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저마다 지닌 재주로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굴러도 한날한시에 새해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누리에 고르게 내리쬐는 햇빛처럼. 높이 42m, 둘2020.11.11 10:06
목하 가을이 상영 중이다. 사각의 창 너머로 보이는 초등학교 교정의 벚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은행나무가 저마다 색색으로 물든 이파리들을 색종이처럼 뿌려댄다. 초등학교 뒤로 보이는 도봉산은 벌써 절정을 지난 듯 붉게 타던 산빛이 갈색으로 변해 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에 보았던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뉴욕의 가을'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서 스토리는 흐릿해졌지만 노란 은행잎이 융단처럼 깔린 센트럴파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포스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뿐만 아니라 가스펠 싱어 이본 워싱턴이 부른 가을의 스산함이 묻어나던 주제가 'Autumn in New York'도2020.11.05 08:43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변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을 뭉턱뭉턱 내려놓는다. 거리에 색종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엽들을 보면 마치 축제가 끝난 행사장 같아 가슴 한편이 휑하다. 물든 잎을 내려놓고 허룩해진 나무들을 바라볼 때면 마치 큰 병이라도 앓고 난 환자 같아서 일견 안쓰러운 생각이 들다가도 잎이 진 뒤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벽암선사의 체로금풍(體露金風)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그동안 자신을 치장했던 무성한 잎들을 모두 내려놓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은 비움이자 처음으로 돌아감이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나목이 된 나무들을 보면 마치 죽은 듯2020.10.28 13:04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설악에서 처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하루에 200m씩 고도를 낮추며 산에서 내려온다는데 순식간에 천지간이 단풍 물결을 이룬 것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느티나무는 물든 이파리들을 색종이처럼 뿌려댄다. 가로변의 은행나무들은 금빛으로 물들어 눈부시고 단풍나무들은 꽃보다 붉은 빛을 자랑하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냥 집 안에 머물기엔 창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의 암봉 주위로 붉게 타는 단풍의 유혹이 강렬하다. 끝내 그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배낭을 꾸려 산을 올랐다. 바람에 쓸리는 느티나무 낙엽을 밟으며 산을 향해 걷는데 산길 들2020.10.21 10:28
숲 친구들과 양평 물소리길을 걸었다. ‘물소리길’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품고 있는 물의 고장 양평에서 조성한 물길 따라 걷기 좋은 길이다. 전철 경의중앙선의 역과 역을 걷고, 다시 마을로 들어가 골목과 숲을 걸을 수 있다. 도시의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답답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북한강에서 남한강으로, 다시 흑천(黑川)으로 이어지는 물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다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양수역에서 용문역까지 총 60여㎞에 이르는 물소리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총 6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3코스인 아신역에서 양평역에 이르는 11.3㎞의 ‘강변 이야기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2020.10.14 11:19
뜨락에 맨드라미 유난히 붉다. 티 하나 없이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을 볕 아래에선 세상 만물이 자신의 색을 더욱 또렷이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휴일 아침, 간단히 짐을 꾸려 가까운 숲을 찾았다. 찬 이슬 내린다는 한로가 지난 탓인지 숲 그늘에 들자 옷섶을 헤집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며칠 새 나무들도 수척해진 듯하고 산책로엔 낙엽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비록 꺼칠하긴 해도 아직은 숲의 나뭇잎들이 초록 일색인 것으로 보아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이 여기까지 이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짧은 코스의 둘레길을 걷고 오랜만에 연산군 묘 앞에 있는 방학동 은행나무를 찾아갔다.2020.10.07 12:48
“우리가/너를 잊었는가 싶을 때/들판은 휘영청, 초록 연두 노랑 갈색으로 흔들린다/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흔들린다/철길너머 낮은 언덕/그 너머 낮은 山 위의 무덤들이 덩달아/제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온 것들을/예쁘게 예쁘게 익혀가고 있는 계절…(박라연의 ’묘지가 아름다운 계절‘ 부분)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시의 제목을 보고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하필이면 ‘묘지가 아름다운 계절’이라니.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할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벌초를 하여 단정해진 봉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추석 명절을 쇠기 위해 읍내 오일장에 나가 말끔하게 이발을 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머리처럼 정말 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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