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09:36
날이 흐리다. 창 너머로 보이는 도봉의 흰 이마가 구름에 반쯤 가려진 채 수묵화의 원경처럼 흐릿하다. 이런 날은 숲길을 걷는 것보다 물소리 명랑한 천변을 따라 걷는 편이 낫다. 녹음으로 한껏 짙어진 숲은 흐린 날이면 한낮에도 어둑하여 꽃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천변을 걷다보면 바람도 시원하고 바람을 타는 꽃들의 춤사위도 볼만 하기 때문이다.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방학천을 따라 걸었다. 물소리를 따라 가는 산책로엔 조깅을 하는 사람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이따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빠르게 나를 앞질러 시야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다리 난간에 걸린 사피니아 꽃타래의 화려한 꽃빛에 홀려 이리2020.07.08 09:29
햇볕이 따갑다. 잠시만 햇빛 속을 걸어도 이마에 땀이 솟는다. 그냥 걸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인데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한낮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거리로 나서곤 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꽃구경을 하기 위해서다. 태양이 제아무리 뜨거워도 꽃들은 피어나고,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처럼 단명하기 그지없는 꽃들은 제 때에 보지 못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후로 두 계절이나 바뀌었다. 그 와중에도 꽃들은 때를 잊지 않고 어김없이 피어나서 우울로 가득 찬 세상을 꽃빛으로 환하게 밝혀주었다. 날마2020.07.01 09:31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도봉산을 바라보곤 한다. 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암봉의 모습이 빼어난 탓도 있지만 날씨가 궁금하여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도봉산이기 때문이다. 흰 바위벽에 아침햇살이 닿아 붉은 빛이 감도는 모습을 보면 새로 운 날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뛰고, 희푸른 아침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기라도 하면 한 폭의 산수화 같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수시로 새로운 모습을 펼쳐 보이는 도봉산을 항상 볼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하며 큰 행운으로 여기며 산다. 한데 장마가 시작되면서 도봉산이 모습을 감추는 날이 잦아졌다. 장마구름이 몰려들면서 구름과 안개가2020.06.24 10:49
일찍 찾아든 무더위가 극성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벗지 못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터에 폭염까지 기승을 부리니 올여름을 어떻게 건너가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집안에서 성능 좋은 에어컨이나 빵빵하게 틀어놓고 지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비싼 전기요금도 감당키 어려운 데다가 자연주의자인 내 생각엔 아무래도 현명한 피서법은 아닌 듯하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24년 여름에 ‘소서팔사(消暑八事)’란 시를 지어 더위를 이기는 8가지 피서법을 이렇게 적었다.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연못에서 연꽃2020.06.17 12:29
단오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 선산을 오르는 길, 산 들머리에서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밤나무였다. 때마침 가지 가득 하얗게 꽃을 피워단 밤나무가 특유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나를 반겨주었다. 옛 시절, 아녀자들로 하여금 외출을 삼가하고 과부들을 근신토록 했다는 에로티시즘의 바로 그 향기다. 내 고향은 어렸을 적엔 밤나무골로 불릴 만큼 마을엔 밤나무가 지천이었다. 그리하여 밤꽃 피는 유월이 되면 온 동네가 밤꽃 향기로 진동을 하곤 했다. 하지만 상전벽해라 했던가. 흐르는 세월 속에 병충해와 벌목으로 인해 그 흔하던 밤나무들도 산길로 접어드는 초입에서 몇 그루가 눈에 띌 뿐 고향 숲도 더욱 우거지고 많이 변했다.2020.06.10 10:57
에어컨을 켰다. 올해 들어 처음 가동이다.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체질 탓에 웬만하면 에어컨을 켜지 않는데 유월로 접어들면서 일찍 찾아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이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느라 봄이 다 가도록 집 가까이에 있는 북한산 둘레길만 열심히 걸었다. 날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숲은 날마다 같은 듯 새로운 모습을 펼쳐 보여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매일 만나는 둘레길을 떠나 새로운 숲 풍경을 기대하며 차를 타고 광릉숲을 찾았다.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했던가. 바야흐로 신록은 짙어질 대로 짙어져 초록물이 뚝뚝 듣는 말 그대로 초록2020.06.03 09:41
유월이다. 어느새 한낮의 햇살은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따가워지고, 숲은 풋풋하던 신록의 싱그러움을 버리고 녹음으로 한껏 짙어져 있다. 아파트 담장엔 선홍의 넝쿨장미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천변의 담벼락을 타고 오른 인동덩굴은 희고 노란 꽃을 가득 피어 달고 그윽한 향기를 풀어놓으며 벌들을 유혹한다. 카메라를 메고 꽃들을 찾아 들판으로 나갈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애써 화려한 꽃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숲을 향해 걷는다. 자외선이 강한 햇살이 따가운 탓도 있지만 숲에도 꽃은 피고, 무엇보다 초록 그늘이 선사하는 서늘한 상쾌함이 강력하게 나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녹음 짙은 숲길로 접어2020.05.27 13:32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4월이라 맹하 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입하 무렵, 가지마다 고봉밥처럼 푸짐하게 흰 꽃을 피워 달았던 이팝나무도 어느새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도 지났으니 이제 여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봄다운 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지나왔다. 비록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아직도 코로나는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러다간 올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2020.05.20 12:10
비 온 뒤의 숲길을 걸었다. 밤새 내린 비로 습기를 흠뻑 머금은 숲은 대지가 피어 올리는 흙냄새와 신록의 수목들이 뿜어내는 나무 향기, 꽃향기로 가득하여 싱그럽기 그지없다. 그 중에도 낮은 기류를 타고 자욱하게 밀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는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초록이 짙어지는 오월의 숲에 들면 아카시아를 비롯하여 찔레꽃, 산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등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눈에 띈다. 꽃의 색은 꽃의 생김새, 향기, 무늬 등과 함께 상리공생(相利共生)하는 곤충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그런 면에서 흰색은 그리 매력적인 색은 아니다. 대신 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의 색을 만드는 데 공을2020.05.13 13:05
오월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일상 하나가 늘어났다. 숲길을 걷는 일이다. 매일아침 나는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서 가까운 숲길을 걷는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사람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신록의 숲길을 걷다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집 가까이에 북한산 둘레길이 있어 5분 정도만 걸으면 숲의 입구에 닿을 수 있다. 예전엔 변두리에 산다는 게 부끄럽다고 여긴 적도 있지만, 요즘은 숲 가까이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숲으로 가는 길엔 다양한 꽃들이 피어 나를 반겨준다. 굳게 닫힌 초등학교 정문 너머로 보이는 보랏빛 등꽃이 눈부시고 좁은 골목길의 주2020.05.06 09:33
드디어 오월이다. 이해인 시인은 '오월의 시'에서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라고 노래했다. 오월의 투명한 햇빛 때문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도봉산의 흰 이마가 더욱 희게 보이고, 산허리를 두른 신록의 숲도 오늘따라 유난히 싱그럽게 다가온다. 창가에 앉아 산을 바라볼 때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떠올리곤 한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보는 이를 압도하고 깊은 골짜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보이고 뒤이어 눈앞에 펼쳐지는 도원! 복사꽃 향기가 안개처럼 둘러싼 듯 아스라한 먹2020.04.29 12:54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답답하고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우울감을 호소한다. 올 초부터 계속된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후유증이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우울증)'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 갇힌 두 죄수가 한 사람은 쇠창살 너머로 하늘의 별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은 흙탕길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 풍경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풍경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때문이다. 자연(自然)이 말 그대로 '스2020.04.22 09:27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온 세상이 우울증을 앓아도 숲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우울감을 떨쳐 버리기엔 숲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야생의 위로'의 저자 에마 미첼은 자신의 저서에서 "나를 자살의 목전에서 붙잡은 것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있던 은은한 초록빛을 띤 묘목이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숲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진다. 초록의 숲은 치유의 공간이자 영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회귀본능은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오늘 내가 숲을 찾은 것은 연두를 보기 위함이었다. 어느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연두가 흐른다'는 문장을 읽고 그 현장을 직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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