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9 13:36
어제는 종일 고운 봄비가 내렸다. 바싹 마른 숲에 산불이 번져 시커멓게 타버린 경북의 산야를 생각하면 늦게 오는 비가 원망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라도 내리는 비가 산천에 초록 물감을 풀어놓을 것을 생각하니 오는 비가 고맙기만 하다. 시절이 어수선해도 봄은 오고, 팍팍하기만 한 나의 삶과 무관하게 꽃은 핀다. 이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나의 투정은 엄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모든 것이 이성적이고 똑 부러지지 않는다. 흐린 봄 하늘처럼 담담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선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좋겠다는 일기예보도 뒤로한 채 거리에 나섰다. 비에 씻긴 하늘에서 쏟아지는 투명한 햇빛이2025.04.02 13:32
4월이다. 성가신 꽃샘바람과 폭설 속에서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와 차가운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딘 새싹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민다. 산수유가 피고 생강나무꽃이 피고, 청매화·홍매화가 새초롬히 피어나 이 땅에도 봄이 왔음을 조용히 일깨워주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꽃나무 가지마다 어여쁜 꽃들이 피어나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여리디여린 초록의 새싹들이 언 땅을 비집고 지상으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바라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하지만 이번 봄은 무연히 맞이할 수가 없다. 열흘 동안에 걸쳐 경북 지역의 산과 들을 까맣게 태워버린 대형 산불 때문이다. 산의 초목들뿐만 아니라 마을과 농작물까지 태워버려 삶의 터전을2025.03.26 15:03
북한산을 찾았다. 부실한 건강도 챙길 겸 산중의 봄소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기왕이면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겠다는 욕심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서둘러도 시간을 맞추긴 어려울 듯싶어 마음을 접었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계단을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이내 숨이 차고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수분지족(守分知足)이란 말이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인데 분수를 지켜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스스로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안다면 헛된 욕심을 부릴 까닭이 없다. 새해 들어 자주 산에 오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건강한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아야겠단 생각에서였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조금2025.03.19 13:41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 한 그루가 노란 꽃망울을 곧 터뜨릴 것만 같더니 다시 몰아치는 꽃샘바람에 떨고 있다. 남녘에는 햇살의 간질임에 이미 매화가 만개했다는 소문인데, 사납게 불어대는 꽃샘바람을 어찌 견딜까 싶어 못내 걱정스럽다. 하지만 꽃샘바람이 제아무리 맵차다 해도 피는 꽃을 막아서지는 못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오히려 시샘하는 바람도 없이 꽃이 핀다면 봄이 심심할지도 모를 일이다. 손끝이 시려 오는 꽃샘바람 속을 걸으며 시경(詩經)에 나오는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인봉간난현기절(人逢艱難顯其節)’이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매화는 혹한의 추위를 견딘 후에야 맑은 향기를 발산하고, 사람은 고난을 만나야2025.03.12 13:40
재래시장 입구 노점에서 6000원을 주고 칼란코에 화분 3개를 샀다. 주인은 검정 비닐봉지에 화분을 담아 건네며 원래 3000원씩은 받아야 하는데 꽃이 일찍 피어 싸게 파는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와 분갈이를 하여 창가에 나란히 놓았더니 칙칙하던 집 안이 환하다. 겨우 작은 화분 몇 개 들여놓았을 뿐인데 봄빛이라도 스친 듯 이토록 집 안이 환해질 수 있다니…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꽃송이를 더하며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꽃을 보며 나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 봄 들판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그려본다. 이제 우수·경칩도 지났으니 꽃 폭죽 터뜨리며 곧 나의 뜨락에도 봄이 도착할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어딘가엔2025.03.05 13:48
육지에서 봄빛이 제일 먼저 닿는다는 해남 여행길에 달마고도를 걸었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가 급히 멈춰 선 듯 우뚝 솟은 산이 달마산(해발 489m)이다. 국토의 가장 남쪽 땅끝에 있는 달마산은 기암괴석 흰 바위들이 빼어나고, 수려한 풍광과 장엄한 기상으로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약 8㎞에 이르는 달마산 능선 길인 달마고도는 관음봉-달마봉-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길과 별도로 미황사 주지가 앞장서서 250여 일 동안 40여 명 인부와 함께 옛 암자로 다니던 길과 임도를 삽과 곡괭이로 고치고 이어 만든 길로 2017년 11월 열었다. 7~8부 능선에 있는 17.74㎞의 이 길은 달마산2025.02.26 13:15
봄빛이 제일 먼저 닿는 곳,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 일대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수절 아침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나주까지 가서 다시 승용차로 갈아타고 2박 3일 동안 나무를 찾아다녔다. 외기는 냉랭하고 바람도 사납게 불었다. 하지만 이 추위는 우수절 얼음같이 곧 사라지고 봄기운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은 나주 송죽리의 금사정 동백나무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죽고 개혁 세력의 선비들은 숙청되었다. 그 개혁 세력 중에서 조광조를 따르던, 나주가 고향인 유생 11명이 금강계(錦江禊)를 조직했다. 영산강 아래 터에 정자를 지어 금사정(錦社亭)이라 이름 짓고, 그 앞에 동백2025.02.19 13:28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하듯 나이 들수록 마음의 풍향계가 자꾸만 고향 쪽으로 향한다. 설중매를 찾아 눈밭을 헤매는 선비처럼 틈만 나면 고향을 찾아간다. 어렸을 적엔 밖으로만 눈길을 주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고향의 비경을 찾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마을마다 품고 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고향 나들이를 잦게 한다. 꽃을 보기 위해선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내 고향은 한수 이북의 포천이라서 북쪽으로 가야 한다. 아직은 봄이 멀기만 한 2월, 모처럼 하루를 빌려 관인문화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포천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강원도 철원2025.02.12 14:12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잦다. 자주 내릴 뿐만 아니라 한 번 내렸다 하면 폭설이어서 온 세상을 하얗게 바꿔 놓는다. 여기저기서 눈 피해가 속출하기도 하지만 순백의 눈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는데 눈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멀리서 보면 마냥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막상 눈길을 걷다 보면 한 걸음 옮기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눈밭을 보면 자신의 발자국을 처음으로 새기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러움과 설렘으로 눈밭을 걸으며 길을 만들곤 한다. 퍼붓던 눈이 그치자마자 집을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2025.02.05 14:25
북한산으로 새해 첫 산행을 다녀왔다. 해가 바뀌고 한 달이 지나도록 산행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마음으로 늙는다고 했던가. 팍팍한 일상에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새로 얹은 나이 한 살의 무게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거리를 오갈 때마다 눈 덮인 북한산의 설경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마음은 자꾸 산으로만 내달렸다. 지난해 겨울, 눈꽃 구경을 하겠다고 아이젠도 없이 산에 올랐다가 고생했던 터라 아이젠과 스틱을 챙겨 산행에 나섰다. 북한산우이역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조금 걷다가 도로 왼쪽으로 난 진달래 능선 오르는 길을 택해 산을 올랐다. 봄이면 능선을 따라 분홍 진달래가 꽃길을 이루는 곳이지만 겨울엔 등산객이2025.01.22 13:29
겨울을 건너가는 몸이 자주 삐걱거린다. 혹한을 견디느라 잔뜩 몸을 움츠리고 지냈던가. 마음이 소란스러우면 몸에 탈이 나게 마련이라는데 내 안이 너무 시끄러웠던가. 머릿속이 어지러울 땐 삶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잠시 떠나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엉킨 생각도 정리하고 바람도 쐴 겸 친구들과 철원을 다녀왔다. 벼가 잘려 나간 논과 황량한 들판 끝으로 흰 눈을 쓰고 있는 원경의 산들이 한 폭의 겨울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적막하고도 쓸쓸한 풍경 속을 꽤 오랫동안 걸었다. 어지러웠던 생각들이 바람의 빗질에 가지런해지고 한결 명료해졌다. 마치 마시멜로를 뿌려놓은 것 같던 흰 비닐로 감싼 볏짚 뭉치들도 사라2025.01.15 13:32
며칠째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품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하지만 혹한의 추위 앞에 인간의 의지는 너무도 약하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체질이라 한동안 산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눈 내린 다음 날, 설경을 만나러 동네 뒷산의 둘레길을 잠시 걸었던 게 전부다. 비록 추위를 타는 체질이긴 해도 겨울 숲에서만 맛볼 수 있는 눈맛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딴엔 부지런을 떨며 서둘렀는데도 산 들머리엔 이미 수많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산마루의 나무들 허리가 유난히 홀쭉하다. 우듬지의 가2025.01.08 14:50
많은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은 은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삭막한 겨울에 내리는 눈은 축복과도 같다. 도로 위엔 염화칼슘이 잔뜩 뿌려져 눈이 쌓일 틈도 없이 녹아 질척거리지만, 차량의 지붕 위나 나무와 지붕들은 하얀 눈에 덮여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온전한 눈 풍경을 감상하려면 숲으로 가야 한다. 눈은 어디에 내려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의 풍경은 숲에서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린 날, 차고 정(靜)한 설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배낭을 챙겨 숲으로 향했다. “그대 새벽 눈길을 걸어/ 인생의 밖으로 걸어가라/ 눈사람도 없이 눈 내리는 나라에서/ 홀로 울며 걸어간 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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