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30 09:08
"봄이 오는 걸 보면/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영민의 시 '봄의 정치' 부분- 시인의 말처럼 요즘 거리에 서면 겨울을 견딘 나무들이 피워올린 꽃들로 인해 세상이 한결 환해져서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천변 둑을 따라 피어난 샛노란 개나리도 어여쁘고, 만개한 매화 향기에 스치면 가슴까지 환해지는 듯하다. 좋은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답답하기만 한 세상이지만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눈부신 꽃들을 피워내고 세상을 환하게 바꾸어 놓는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에게 희망을 속삭이2022.03.23 08:16
"봄이 오면 나는/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이해인의 시 '봄이 오면' 일부- 봄이 온다고 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빼앗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봄을 기다린다.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번지 없는 봄바람처럼 세상이 어수선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핀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봄은 기다림이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너도바람꽃을 찾아 세정사 계곡에 다녀왔다. 지난해에2022.03.16 09:31
주말 밤부터 봄비가 내렸다. 무려 70여 일만의 단비다. 50년 만의 겨울 가뭄 속에 동해안에선 사상 최대의 산불이 발생했다. 진화대원들의 밤샘 사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풍을 타고 번져만 가던 화마가 봄비 덕에 완전히 제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비가 내리면 옷보다 먼저 마음이 젖는 여린 감성을 지닌 터라 비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번에 내린 비는 일부러라도 맞고 싶을 만큼 반가운 비였다.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산천초목 호2022.03.09 10:27
코로나 대확산으로 세상이 한껏 어수선한데, 경북 울진에선 대형 산불까지 발생하여 수십 년 가꿔온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 급기야는 소광리의 금강송 군락지까지 위협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는 국내 소나무 가운데서도 재질이 특히 뛰어나 최고로 치는 금강송 군락지다. 2247ha의 면적에 수령이 200년이 넘은 노송 8만 그루와 수령이 520년인 보호수 2그루, 수령 350년인 미인송 등 1000만 그루 이상의 다양한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금강송 최대의 군락지로 꼽힌다. 화마로부터 수백 년 가꿔온 소중한 소나무 숲이 온전히 지켜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소나무는2022.03.02 08:26
마침내 3월이 왔다. 굳이 '마침내'란 부사를 앞세워 3월이 왔다고 쓴 것은 그만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눈 속에 피어나는 설중매나 복수초는 3월이 오길 기다릴 이유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봄꽃은 3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그 고운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우수(雨水)가 지난 뒤에도 계속되는 한파로 인해 떨쳐버리고 싶은 겨울의 흔적과 우울한 기억들은 봄눈 녹듯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비 한 번 내리고 나면 지난 계절의 흔적들은 빗물을 따라 땅속 깊이 스며들어 기꺼이 새로운 생명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는 마술처럼 세상 속으로 눈부신 꽃송이들을 피워낼 것이다. 겨울 외투와 마스크에 막혀2022.02.23 08:48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지났건만 뺨을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차다. 해가 바뀌어도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역병처럼 겨울 추위는 날이 갈수록 점점 기세를 높이는 것만 같다. 입춘이 지나면 까치들은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며 헌 둥지를 수리하느라 바쁘고 천변 오리들의 빨갛게 언 발은 점차 분홍빛을 띠기 시작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고 겨울빛에 잠겼던 천변을 따라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는 봄을 그토록 기다려왔건만 어디에도 봄의 기미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시절이 어지럽긴 해도 봄이 올 것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조금 더디게 올 뿐이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눈 속에 매화를 찾던 옛 선2022.02.16 08:45
바람이 차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가 코앞이건만 바깥 풍경은 여전히 겨울빛이다. 박수근의 그림 속 나목들을 닮은 나무들도 발을 오그리고 있다. 이따금 회색빛 구름이 먼 나라의 소식처럼 눈발을 흩뿌리고 간다. 먼 산 풍경이 궁금하여 창문을 열면 와락 달려드는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오싹한 한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어 바람 앞에 펼쳐본다. 하지만 어디에도 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아득하여 멀기만 한 봄이다.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분명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여느 해처럼 천지간에 봄빛을 흐드러지게 풀어놓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2022.02.09 08:14
벗들과 북한산의 원효봉을 올랐다. 도봉구로 이사 온 뒤로는 날마다 바라보며 사는 친숙한 산이지만 겨울 산행은 처음이다. 이 찬 계절에 산을 오르는 일은 고행과도 같다. 얼핏 생각하면 잎도 지고 꽃도 없는 겨울 산을 오르는 일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냉기를 품은 북풍과 눈비에 얼어붙은 길은 자칫하면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굳이 겨울 산을 오르는 까닭은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걸어서 산의 품에 안기는 것은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방학동 집을 나설 때마다 바라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고양시 효자동 쪽에서 바라보는 북2022.01.26 08:47
오랜만에 제법 큰 눈이 내렸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아니면 눈이 내리기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려대는 부지런한 도로관리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시에선 좀처럼 쌓인 눈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모처럼 눈길을 걸을 수 있었다. 눈은 잿빛 도시의 풍경을 한순간에 동화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다. 앙상하던 나목의 가지마다 풍성하게 흰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조붓한 골목길에도, 쓰레기가 가득 담긴 종량제 봉투 위에도 눈은 마치 흰 천으로 모든 물상을 다 감싸듯 내려 쌓인다. 세상 모든 것을 눈으로 덮어놓고 만물이 잠든 속에서 다시 시작을 준비하는 듯하다. 그래서 눈 내린 아침은 세상의 첫 아침처럼 경건하고 거룩한2022.01.19 09:08
날씨가 춥다. 절기상 소한(小寒)이 지나고, 대한(大寒)도 멀지 않은 때이고 보니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코로나19로 뒤숭숭해진 시절 탓으로 몸과 마음이 한층 추위를 타는 듯하다. 간밤엔 싸락눈까지 내렸다. 왕소금을 뿌려 놓은 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싸락눈 밟히는 소리가 더욱 추위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춥고 스산한 겨울밤엔 백석을 읽는다. 추운 북녘땅이 고향인 백석의 시를 읽으면 한겨울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오롯이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등장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시다2022.01.12 08:53
숲길을 따라 걸었다. 장갑을 끼었음에도 손끝이 시려오고 귀가 얼얼할 만큼 바람이 차다.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숲의 공기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온몸이 떨려온다. 때로는 성가시고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숲길을 걷는 이 산책을 멈추지 않는다. 잎을 모두 떨군 채 깊은 묵상에 잠긴 겨울나무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지만 적요하기까지 한 숲의 고요 속을 거닐며 사색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는 일이란 곧 걷는 일이라고 했다. 제아무리 교통수단이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삶은 걸으면서 시작되고 걸음이 멈춘 곳에서 끝이 난다. 그런 의미로 보면 걷는다는 것은 건강을 위한 운2022.01.05 08:27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떠들썩한 해맞이 행사도 없이 또 한 해를 맞이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내 삶을 돌이켜보면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을 뿐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중요한 일은 별로 없다. 크고 중요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는 게 더 바람직하단 생각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다. 임인년인 올해는 검은 호랑이해라고 한다. 호랑이해인 만큼 모두가 호랑이의 눈으로 이웃을 잘2021.12.29 08:45
혹한의 추위 속에 2021년이 저물어간다. 마지막 잎새 같은 묵은 캘린더를 떼어내고 새 캘린더로 바꾸어 걸며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아, 벌써 일 년!'이었다. 연초에 호기롭게 세웠던 그 많은 계획은 얼마나 이루었는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올 한 해도 하릴없이 흰 머리 숫자나 늘리며 생의 잔고만 축낸 것은 아닌가 싶다. '인생 뭐 있남? 그냥 재미있게 살믄 되는 겨.' 하던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하루하루 즐겁게 살지도 못했고 한해살이풀처럼 세상에 내어 보일 실한 열매 하나 없이 지난 삼백예순 날이 낙엽처럼 흩어진 것만 같아 쓸쓸해진다. 가족이나 이웃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못했고 자신에게도 충실하지 못했고, 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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