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꽃축제로 시작한 에버랜드 장미축제가 지난 16일 막을 올렸다. 화려하게 수놓아진 720품종 300만 송이 장미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은 개막 이후 10여 일간 약 25만명이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에버랜드는 올해 장미축제 40주년을 맞아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병철 창업회장의 뜻을 이어 조성한 장미 정원의 유산을 단순한 시즌성 축제가 아닌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올해 장미축제의 정식 명칭은 ‘로즈가든 로열 하이티(Rose Garden Royal High Tea)’로, 장미에 차문화와 스토리텔링, 예술 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예술이 피어나는 정원으로 변신한 로즈가든
주인공 캐릭터는 장미를 사랑하는 사막여우 ‘도나 D. 로지’다. 도나를 중심으로 홍학, 나비, 열쇠 등의 캐릭터들이 로즈가든에서 한 달간 티파티를 연다는 판타지 세계관이 펼쳐진다. 정원 곳곳에 배치된 ABR(Aero Balloon Robot), 조형물, 일러스트 등의 오브제를 통해 관람객은 감성적인 스토리라인을 경험할 수 있다.
정원 전체에 예술적 감성도 더했다. 다리아송, 갑빠오, 부원 등 유명 아티스트 및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통해 장미와 함께 즐기는 예술 정원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했다.
과거 웨딩컨벤션 공간으로 사용됐던 장미성도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새롭게 변신했다. 다리아송의 섬세한 드로잉으로 파사드를 연출한 거대한 외관에, 갑빠오 작가와 협업한 초대형 사막여우 조형물을 성 위에 설치해 동화적 분위기를 더했다. 2층 실내 공간은 그래픽과 포토존, 굿즈 쇼룸 등을 담은 ‘로로티 컨셉 스토어’로 운영돼, 로즈가든을 찾은 이들이 꼭 들르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로즈가든 옆 ‘쿠치나마리오’에서는 유럽 대표 문화인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길 수 있다. 250년 전통의 덴마크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의 티웨어와 도나 D. 로즈 캐릭터가 그려진 식탁보와 플레이스매트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총 70여 종의 로로티 굿즈도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드리머’, ‘로자리안’, ‘가디언’ 등 3가지 콘셉트로 출시된 사막여우 인형을 비롯해, 우산, 양말 등 실용적인 상품들과 다양한 콜라보 굿즈가 마련됐다.

네 가지 테마의 로즈가든, 꽃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로즈가든은 빅토리아, 비너스, 큐피드, 미로 총 4개 테마정원으로 구성됐다. 에버랜드에서 개발한 품종인 에버로즈를 포함해 다양한 장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만국박람회를 모티브로 한 ‘빅토리아’에서는 다양한 에버로즈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비너스’에서는 세계장미대회 수상작이나 장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품종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로’에서는 ‘향기에 취해 길을 잃어버리는 공간’이라는 설정 아래, 향기가 진한 장미를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큐피드’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가족 단위 가드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화려하고 다양한 장미를 매개로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로즈가든의 매력이다.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장은 “로즈가든에는 늘 정원사들이 있다”며 “고객들은 이곳에 오면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을 좋아해 도슨트 진행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꽃이 즐길거리가 되고 문화가 될 거라는 창업 회장의 정신이 이 공간에서 구현되고 있다”며 문화 콘텐츠로서의 장미의 의미를 덧붙였다.

전 세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에버랜드
장미축제의 변화는 단순히 컨셉 차원이 아닌 테마파크의 체질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 어린이 중심이던 테마파크의 수익성이 줄어들면서 삼성물산은 상품과 고객군의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섰다.
이는 2022~2023년 ‘푸바오 붐’을 통해 확인된 결과와도 관련이 있다. 푸바오 열풍 속에서 에버랜드는 2022년 565억 원, 2023년 66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77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49.9% 급증했다. 청소년과 어린이 중심이었던 방문층이 MZ세대, 중장년층까지 확장된 결과다.
장미원과 장미축제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고객층 다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든패스’를 출시했다. 자유이용권보다 저렴한 가격에 전체 시설이 아 장미원, 포시즌스가든, 동물원 등만을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을 위해 마련됐다. 이용자를 위한 전용 출입구도 운영하며 이용 편리성을 높였다.
이번 축제에서 눈에 띈 점 역시 방문객의 다양한 연령대였다. 20대 커플은 물론 어린 자녀와 함께한 젊은 부부, 고령층까지 전연령대를 고르게 목격할 수 있었다. 서울에 거주 중인 한 70대 A씨는 “에버랜드를 아이들만의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며 “장미축제에 동년배 친구들과 자주 찾는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배택영 부사장은 “최근 50~60대 방문객들도 자주 찾고 있다”며 “이번 장미축제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휴식 공간이자 예술 경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정경 기자 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