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같은 조치는 정부의 감시 권한을 확대하는 동시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팔란티어와 계약을 통해 국세청(IRS), 국토안보부(DHS), 사회보장국(SSA), 보건복지부(HHS) 등 여러 연방 기관의 데이터를 ‘파운드리(Foundry)’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있다고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파운드리는 데이터를 수집·정리하고 시각화하는 팔란티어의 대표 제품이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정부 내 정보 공유 확대를 명시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이후 행정부는 이 계획을 뒷받침할 기술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출범 이후 팔란티어에 총 1억1300만 달러(약 1530억원)를 집행했으며 최근 국방부로부터 추가로 7억9500만 달러(약 1조76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팔란티어는 이미 이민세관단속국(ICE)과도 협력 중이다. ICE는 지난달 3000만 달러(약 406억5000만원) 규모의 계약을 통해 실시간 이주민 이동 추적 시스템 개발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사회보장국과 세무당국 간 데이터 통합도 논의 중이다. 미 국세청에서는 지난달부터 팔란티어 엔지니어들이 파운드리를 기반으로 납세자 정보를 검색 가능한 단일 데이터베이스로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현재는 장기 계약을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팔란티어 직원들과 전직 국토안보부 관계자들은 “정부효율부가 주도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정보 통합을 넘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겨냥한 정치적 감시에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효율부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끌어온 신설 조직으로 팔란티어 출신 인사 3명과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의 투자 회사 출신 인사 2명이 현재 소속돼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퇴사한 전직 엔지니어 린다 샤는 “단일한 목적을 위해 수집된 데이터가 그 의도를 벗어난 방식으로 재사용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선한 목적이더라도 데이터가 결합되면 악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비판했다.
팔란티어 소속 전략가였던 브리아나 캐서린 마틴도 “ICE와의 협업 확대는 내 가치관의 경계를 넘는 일”이라며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팔란티어는 기술의 영향력을 고민하는 진지한 회사였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이런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편, 팔란티어 측은 NYT의 논평 요청에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데이터 처리자이지 통제자가 아니다”며 “분석 권한은 해당 기관에 있으며 우리는 그 지시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역할만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기관 간 정보 단절을 해소하고, 데이터 수집을 간소화함으로써 정부 효율성을 높이고 납세자의 세금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보도와 관련해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 전미학생연합, 노동자단체 등은 이미 팔란티어와의 협력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디지털 권리단체 EFF의 변호사 마리오 트루히요는 “국민은 정부에 제공한 정보가 원래 목적 외에 쓰이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부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팔란티어는 지난 2020년 기업공개(IPO) 이후 국방·보건·사법 분야에서 다양한 연방 계약을 따내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이후 팔란티어 주가는 140% 넘게 상승했다. 알렉스 카프 CEO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팔란티어의 사명은 숨겨진 진실을 데이터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