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재계 오너일가의 사법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 오너 3세인 최윤범 회장의 혐의는 그 규모나 법 위반의 중대성 면에서 조 회장을 훌쩍 웃돈다는 점에서 사법부가 칼끝을 겨눌지 주목된다.
1일 관련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조현범 회장에게 횡령·배임 및 계열사 부당 지원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조 회장은 대표와의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현대차 협력사에 한국타이어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 자금 50억 원을 대여한 혐의를 유죄로 봤다. 조 회장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70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에 대해 "한국타이어 총수 일가로서 지위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러 죄책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일부 범행을 부인하며 그다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 기간인데도 유사 수법으로 판결 확정 후 범죄를 저질렀다"고 질책했다.
조 회장의 실형에 세간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같은 오너 3세로서 배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쪽으로 쏠리고 있다. 다만 조 회장의 범죄 사실은 대체로 사익 추구형이었다면, 최윤범 회장에게 제기된 혐의는 회삿돈을 통한 경영권 방어 시도로 더 구조적이고 계획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최 회장은 배임 혐의 및 자본시장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혐의는 지난해 10월 단행한 자사주 공개매수와 관련이 있다. 당시 고려아연은 최대주주 영풍·MBK파트너스 측의 공개매수에 맞서 2조원 규모 자사주를 사들이는 방식을 통해 최 회장 측 경영권을 방어했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에 6800여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형사 고소됐다.
또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당시 신고서에 "공개매수 이후 회사 재무구조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는데, 그 직후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시도했다. 신고서를 제출하는 시점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면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해당 건을 수사 중이다.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SMC를 동원해 최대주주 영풍의 지분 10.33%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상호주 외관을 형성한 행위도 논란이다. 상호주 외관 형성은 공정거래법이 명확히 금지하는 사항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해 법적 경계를 넘은 전례 없는 수단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해당 거래는 현재 공정거래법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됐다.
이 외에도 △최 회장의 지인이 경영하는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운영 펀드에 회삿돈 5614억 원을 투자해 손실을 본 사건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이그니오홀딩스를 인수해 회사에 대규모 손해를 끼친 의혹 △씨에스디자인그룹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 경영 판단 관련 배임 혐의가 줄줄이 제기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조현범 회장의 실형에 비해 최윤범 회장의 혐의는 법적으로 훨씬 중대하고 금액 또한 훨씬 크기 때문에 사법 리스크는 조 회장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