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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베트남 무역협정, 20% 관세로 타결...'환적 40%' 규정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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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베트남 무역협정, 20% 관세로 타결...'환적 40%' 규정 도입

"베트남,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세 딜레마...중국과의 무역도 복잡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4월 16일 베트남 하이퐁에서 많은 국가에 대한 관세를 90일 일시 중지한다고 발표한 후 하이퐁 국제 컨테이너 터미널 근처에서 컨테이너선이 보인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4월 16일 베트남 하이퐁에서 많은 국가에 대한 관세를 90일 일시 중지한다고 발표한 후 하이퐁 국제 컨테이너 터미널 근처에서 컨테이너선이 보인다. 사진=로이터
최근 미국과 베트남이 새로운 무역협정에 합의하면서, 베트남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기존 46%에서 20%로 낮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미국 현지에서 직접 이 사실을 알렸다. 이번 합의에서 미국은 베트남을 거쳐 들어오는 '환적 상품'40%의 높은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을 통해 우회 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고 지난 3(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이번 협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국가들과 추진해온 '상호관세' 정책의 일환이다.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미국과 무역협정을 맺은 첫 번째 나라가 됐다. 미국은 베트남산 제품에 20%의 관세를 매기는 대신, 미국산 제품은 베트남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 보잉 항공기 50(11조 원)와 미국 농산물 29억 달러(39500억 원)어치를 사들이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환적 40%' 규정, 중국과 베트남 무역에 미치는 영향


미국이 베트남을 통한 환적 상품에 40%의 관세를 매기기로 한 것은 중국을 직접 겨냥한 조치다. 중국산 부품이나 완제품이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원산지 세탁' 관행을 막으려는 의도가 담겼다. 베트남은 최근 태블릿, 휴대전화, 이어폰 등 소비자 가전의 생산 중심지로 떠올랐지만, 이들 제품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들여온 부품과 시스템을 써서 베트남에서 조립·생산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베트남 내 중국계 자본 공장과 세계 공급망이 복잡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의 무역은 20251분기 기준 512억 달러(6976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5% 늘었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베트남은 중국의 세계 6대 무역 상대국 중 하나다. 베트남 공식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들어온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가까이 늘었다. 이처럼 두 나라 경제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환적 규정 강화는 베트남의 수출 구조와 중국과의 무역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베트남의 '협상 딜레마'와 아시아 무역질서 변화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경제권 사이에서 '협상 딜레마'에 놓였다. 팜 더 안 베트남 국립경제대학교 교수는 최근 하노이에서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환적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베트남의 수출 능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롤랜드 라자 호주 로위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도 "미국이 환적 규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베트남의 수출 환경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자국 이익이 침해되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허융첸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어떤 거래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공식 성명을 통해 밝혔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관련 조약이 제3자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미·베트남 협정이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무역 협상에도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 공급망 변화와 베트남의 대응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최근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제품 원산지 검사를 강화하고, 실시간 부정행위 적발을 위한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조치가 베트남의 세계 공급망 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베트남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세 인하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20%의 관세가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르 항 베트남 수산물 수출업자 및 생산자 협회 부사무총장은 "20% 관세로는 에콰도르 등 10% 관세를 적용받는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미·베트남 무역협정이 중국과의 무역 질서를 복잡하게 만들고, 아시아 내 공급망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베트남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은 만큼, 미국의 환적 규정 강화가 두 나라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