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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10년간 서방 첨단기술로 '하모니' 극지해 감시망 구축…NATO 핵잠수함 추적체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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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10년간 서방 첨단기술로 '하모니' 극지해 감시망 구축…NATO 핵잠수함 추적체계 완성

북극 바렌츠해서 운영 중…ICIJ·워싱턴포스트 공동조사 적발 "5천만 달러 규모 기술 수입"
러시아가 지난 10년간 미국·독일·노르웨이·일본·캐나다 등 서방 선진국의 첨단 수중 감시 기술을 비밀리에 수입해 북극 바렌츠해에 거대한 해저 감시망을 구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가 지난 10년간 미국·독일·노르웨이·일본·캐나다 등 서방 선진국의 첨단 수중 감시 기술을 비밀리에 수입해 북극 바렌츠해에 거대한 해저 감시망을 구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지=GPT-4o
러시아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10년간 미국·독일·노르웨이·일본·캐나다 등 서방 선진국의 첨단 수중 감시 기술을 비밀리에 수입해 북극 바렌츠해에 거대한 해저 감시망을 구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탐사기자협회(ICIJ), 워싱턴포스트, 독일 공영방송(NDR), 프랑스 르몽드 등 13개 국제 언론이 23일(현지 시각) 공개한 공동조사 결과다.

'하모니(Harmony)'라는 코드명으로 운영되는 이 극지 감시 시스템은 수중 마이크, 음파 탐지 장비(소나), 광케이블을 결합한 수천㎞ 규모의 해저 감시망이다. 러시아의 북방함대 핵잠수함 기지에 접근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잠수함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핵잠수함의 안전한 운항 통로를 제공하는 이중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이프러스 법인이 기술 수입 중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사이프러스 림마솔 소재 '모스트렐로 커머셜(Mostrello Commercial Ltd.)' 법인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첨단 수중 장비를 수입했다. 러시아 국적 사업가 알렉세이 스트렐첸코가 소유한 이 법인은 러시아 방위산업체 코메타(Kometa)의 하청 역할을 수행했다.

2013~2024년 모스트렐로와 관계 회사들은 5000만 달러(약 717억 원)가 넘는 규모의 서방 첨단 해양 기술을 구매했다. 구매 품목에는 노르웨이 국방 대기업 콩스베르그(Kongsberg)의 고속 음향 장비, 독일 노르드도이체 시카벨베르케(Norddeutsche Seekabelwerke)의 해저 케이블 시스템, 영국의 포럼 에너지 테크놀로지스(Forum Energy Technologies)의 3000m 심해 작동 무인 잠수정 등이 포함됐다.

2015년에는 콩스베르그로부터 첨단 음향 장비를 수입한 거래 기록도 발견됐다. 또한 일본 통신 대기업 NEC와 미국 소나 제조업체 에지텍(EdgeTech)과도 거래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기업들도 케이블 측량·포설용 무인기와 첨단 음향 센서 등 100만 파운드(약 19억 원) 규모의 장비를 납품했다.

거짓 서류로 '민간용' 위장


서방 기업들은 대부분 이 법인의 실제 군사 목적을 인식하지 못했다. 일부 거래에서 계약서가 러시아어로 작성된 미국 소나 시스템도 단순히 '발트해 해저 케이블 측량용'이라고 믿고 판매했다. 모스트렐로는 가짜 최종 사용자 서류를 이용해 실제 용도를 은폐했다.

독일 법원 기록에 따르면 모스트렐로는 러시아 정보기관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러시아-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사업가 알렉산데르 슈킨이 모스트렐로 운영을 주도했는데, 그는 지난 9월 독일 법원에서 '제재를 위반한 군사 기술 수출죄'로 4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슈냑킨은 현재 항소 중이다.

2024년 10월 미국 재무부는 모스트렐로와 스트렐첸코, 관련 회사들에 제재를 가했다. 재무부는 이들이 "러시아 방위부를 포함한 러시아 당국을 위해 잠수함 케이블을 부설·유지·보수했다"고 적시했다.

'소수스' 수준의 전략적 위협…NATO 북극 감시능력 강화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모니 감시망은 무르만스크에서 노바야젬랴, 프란츠요세프 섬에 이르는 반달 모양의 탐지 벽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정확히 러시아 북방함대와 핵 억지력의 중추인 전략 핵잠수함이 배치된 지역이다.

허드슨연구소의 브라이언 클라크 전 미국 해군 장교는 "이 시스템은 러시아 핵잠수함을 항구에서 배치 지역까지 탐지되지 않은 채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하모니 체계가 러시아에 조기 경보와 반탐지 능력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해군 전문가들은 이 체계를 냉전 시기 미국의 '소수스(SOSUS·음파감시체계)'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는 1950년대 개발돼 냉전 기간 동안 소비에트 잠수함 추적에 대성공했던 해저 감시망이다.

노르웨이 정보국 "유럽 회사를 이용한 공급망 교묘한 은폐"


노르웨이 정보국 닐스 스텐소네스 부장(해군 중장)은 "러시아가 정당한 유럽 회사를 접촉점으로 활용해 공급망의 일부를 은폐했다"며 "이로 인해 실제 최종 사용자를 추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모스트렐로 구매 선박의 이동 경로 추적을 통해 감시망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한 서방 정보기관들도 2021년부터 러시아의 이 조달 네트워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2021년 미국 당국이 독일 당국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서 독일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감시망은 2013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됐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가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술 수입을 진행했다. 러시아는 세이셸·벨리즈·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다수의 유령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등록해 진정한 소유권을 은폐했다.

NATO, 북극 감시능력 강화 시급


최근 NATO는 인공지능(AI)과 무인 자율 시스템을 활용한 해양 감시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NATO 연합군사령부는 '태스크포스X(Task Force X)'를 창설해 자율 해양 시스템을 활용한 지속적 감시능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포르투갈 주도 해양 무인 시스템 실습 '렙뮤스 2025'에는 22개국에서 2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러시아는 또한 중국의 '투명한 대양' 다층 해양 감시체계 고도화 움직임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