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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호르무즈가 살린 알래스카 LNG…'죽은 프로젝트'가 아시아 에너지 판도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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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호르무즈가 살린 알래스카 LNG…'죽은 프로젝트'가 아시아 에너지 판도 좌우

글로벌 LNG 공급 20% 차질 현실화…440억 달러 북극 가스전, 아시아 수입국의 '플랜B'로 급부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또한 프로젝트에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자원 개발 규제 완화를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추진 중이며, 우방국 대상 LNG 수출 확대를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미국 LNG 수출은 일평균 약 140억 세제곱피트(Bcf)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또한 프로젝트에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자원 개발 규제 완화를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추진 중이며, 우방국 대상 LNG 수출 확대를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미국 LNG 수출은 일평균 약 140억 세제곱피트(Bcf)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전쟁의 화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길목이 막힌다면 아시아로 향하는 LNG(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5분의 1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공백을 채울 대안을 찾던 아시아 수입국들의 시선이 일제히 미국 최북단, 알래스카 노스슬로프(North Slope)로 향하고 있다. 수년간 경제성 논란으로 사실상 동면 상태였던 440억 달러(656200억 원) 규모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지정학적 위기를 계기로 전격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핵심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핵심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위기가 촉발한 에너지 패닉


중동 분쟁이 격화하면서 에너지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국제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OilPrice.com)는 지난 16(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글로벌 LNG 공급의 20%가 현실적인 차질 위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LNG 수출국이 해협 봉쇄 시나리오에 그대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단기 현물(Spot) 시장에서는 이미 가격 급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이 단기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같은 현물 의존 구조의 취약성이 아시아 수입국들로 하여금 20년 이상의 장기 공급 계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핵심 동인이다.

토쿄 회의실에서 시작된 '계약 러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개발사 글렌파른 그룹(Glenfarne Group)은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에너지 회의에서 아시아 구매자들과 구속력 있는 장기 구매 계약(offtake agreement)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아담 프레스티지(Adam Prestidge) 글렌파른 알래스카 LNG 사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동 사태로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대한 실질적 관심이 급증했다""기존의 예비 계약을 20년 이상의 장기 공급 계약으로 전환하려는 구매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중동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달, 프랑스 에너지 메이저 토탈에너지(TotalEnergies)는 알래스카 LNG와 연간 200만 톤의 LNG20년간 공급받는 예비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젝트에 무게를 실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알래스카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검증한 첫 번째 서구 메이저의 베팅"으로 평가한다.

알래스카 노스슬로프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남중부 해안까지 끌어와 아시아로 수출하는 이 구상은 1280㎞에 달하는 혹한의 툰드라 지대를 가로지르는 가스관 건설이 핵심이다. 글렌파른은 당초 2025년 말로 잡았던 가스관 최종 투자 결정(FID)2026년으로 조정했으며, 수출 터미널 최종 승인은 2027년 초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프레스티지 사장은 "구속력 있는 계약의 최종 조율과 금융 조달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성 약점' 극복한 지정학 프리미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아시아 투자자들로부터 '비싼 가스'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극지방 인프라 건설 비용과 긴 수송 경로가 카타르·호주산 LNG 대비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방정식이 바뀌었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Btu1~2달러 차이도 협상 결렬의 이유가 됐지만, 지금은 공급 안정성이 가격 프리미엄보다 위에 놓인다""중동을 경유하지 않고 태평양을 직접 건너오는 알래스카 가스의 지정학적 안전마진(safety margin)을 시장이 본격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또한 프로젝트에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자원 개발 규제 완화를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추진 중이며, 우방국 대상 LNG 수출 확대를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미국 LNG 수출은 일평균 약 140억 세제곱피트(Bcf)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국, 수혜국이자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나


한국은 카타르·호주에 이어 세계 3위권의 LNG 수입국이다.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미 체결한 연간 100만 톤 규모의 예비 계약을 구속력 있는 장기 오프테이크 계약으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KOGAS) 역시 그동안 경제성 우려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으나, 카타르발 공급 쇼크를 계기로 안보 차원의 지분 참여를 포함한 타당성 검토를 재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의 시각도 180도 달라졌다. 이란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알래스카 LNG는 경제성이 낮은 위험한 도박"이라는 평가가 주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생존권"으로 사실상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한·미 간 진행 중인 '3500억 달러(522조 원) 투자 협력 프레임'과 맞물려, 알래스카 LNG 지분 참여나 장기 계약이 양국 경제 협력의 핵심 패키지로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알래스카 LNG는 단순 수입 계약을 넘어 한국이 미국 에너지 인프라에 전략적으로 편입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고 평가한다.

2026년이 분기점이다


알래스카 LNG의 상업적 성패는 결국 2026년의 FID 결정에 달려 있다. 충분한 장기 구매 계약이 확보되지 않으면 금융 조달이 불가능하고, 금융 조달 없이는 착공이 불가능한 구조다. 중동 위기가 장기화할수록 아시아 수입국의 계약 서명 압박은 커지고, 역설적으로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호르무즈가 흔들릴 때마다 세계는 '중동 없는 에너지 지도'를 꿈꿨다. 알래스카 LNG는 그 지도 위에 그려진 가장 굵직한 대안 루트다. 전쟁의 불길이 역설적으로 북극의 천연가스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