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밸리 콘퍼런스 이후 빅테크 CapEx 7250억 달러 재확인…"단기 이탈 자금, 결국 AI 반도체로 회귀" 관측 힘 실려
이미지 확대보기7월 13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8.95% 폭락하며 6806.93에 마감, 두 달여 만에 7000선을 내줬다. 올해 일곱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SK하이닉스(-15.4%)와 삼성전자(-10.7%)가 지수를 끌어내렸다. 반도체 '투톱'은 최고가 대비 각각 38%, 32% 낙폭을 기록했다.
표면적 방아쇠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 재점화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리밸런싱에 따른 수급 붕괴였다.
시장은 '피크아웃(peak out)'을 다시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열린 한 비공개 모임의 기류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글로벌 자금의 큰손들이 향후 돈을 어디에 묻을지 가늠하려면, 폭락하는 호가창보다 이 모임의 대화록을 읽는 편이 낫다.
'여름 캠프'는 어떻게 'AI 하드웨어 전략회의'가 됐나
과거 디즈니의 ABC 인수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의 산실이었던 이 모임은,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성격이 바뀌고 있다. 블룸버그와 포브스 등은 올해 행사에서 미디어·엔터 딜만큼이나 AI 인프라·반도체·전력이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AI 병목이 알고리즘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있다는 인식이 최고위급에서 공유된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02년부터 이 행사에 참석해왔고,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자리했다. 재계는 이 회장이 AI 반도체 공급망 경쟁이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메모리·파운드리·첨단 패키징으로 확대된 국면에서 빅테크 고객사들과 협력 접점을 넓히려 한 것으로 본다. 삼성 관점에선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논의와 파운드리 수주 타진이 걸린 자리다.
7250억 달러라는 하방 경직성
선밸리에서 확인된 '투자 지속' 공감대는 숫자로 뒷받침된다. 아마존·알파벳(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4대 하이퍼스케일러의 2026년 설비투자(CapEx)는 합산 약 7250억 달러(약 1083조 원)로, 지난해 4100억 달러(약 613조 원) 대비 77% 급증할 전망이다.
아마존이 약 2000억 달러(약 299조 원)로 가장 많고 구글 1750억~1850억 달러(약 261조~276조 원), 메타 1150억~1350억 달러(약 171조~201조 원), MS 약 1900억 달러(약 283조 원) 수준이다. 애널리스트들은 2027년 합산 CapEx가 1조 달러(약 1494조 원)를 넘을 것으로 본다.
주목할 대목은 이 지출이 '메모리 가격 상승'을 이미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MS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사상 최대 CapEx 중 250억 달러(약 37조 3100억 원)를 메모리·부품 가격 상승분으로 지목하며, 2026년 내내 컴퓨팅 용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습에서 추론(inference)으로 AI 수요 축이 이동하며 24시간 가동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발열·부품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AI 경제는 건강하다"며 최근 매출 성장세가 막대한 자본 투입을 정당화한다고 평가했다.
빅테크가 지출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컴퓨팅에서 밀리는 것은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유일한 실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이 '절대적 브레이크 장치'로 작동한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데이터센터를 국가안보 인프라로 규정하고 보조금과 수출통제를 병행하자, AI 인프라 수요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쉽게 꺾이지 않는 하방 경직성을 갖게 됐다.
고정된 숫자 뒤, 선밸리가 던진 '새 좌표'
한편, 7250억 달러라는 CapEx 총액은 올 초 실적 발표로 이미 공개된 '고정 숫자'다. 정작 비공개 선밸리에서 포착된 것은 그 돈이 흘러갈 방향이다.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올해 지배적 화두는 AI의 '가능성'이 아니라 '수익성'으로, 데이터센터·첨단 칩·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실제 이익으로 이어질지에 논의가 집중됐다.
승부의 무게추가 알고리즘에서 전력망·하드웨어 선점이라는 물리적 병목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마케팅 담당 대신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대동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이 네트워킹을 넘어 2나노 공정·HBM 수주 '영업 일선'에 나섰다는 신호다.
SK하이닉스 '2분기 컨센 하회'의 진짜 의미
이번 급락 국면에서 SK하이닉스에 대한 한국투자증권 리포트가 투심을 자극했지만, 그 내용은 '실적 폄하'와는 거리가 멀다. 리포트는 2분기 영업이익을 60조 4000억 원으로 추정해 컨센서스(65조 원)를 8%가량 밑돌 것으로 봤으나, 이는 실적 훼손이 아니라 이미 체결된 장기공급계약(LTA)을 반영해 가격 가정을 현실화한 결과라는 게 핵심이다.
컨센서스 하회 배경도 "경쟁사 대비 HBM 매출 비중이 높아 시장 평균보다 평균판매가격(ASP) 상승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오히려 HBM 주도권을 방증하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리포트는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380만 원,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했으며, 3분기 HBM4 본격 양산과 함께 ASP 상승률이 시장 평균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LTA 확대가 메모리 산업의 고질적 약점이던 실적 변동성을 낮추고, 밸류에이션이 '이익의 크기'보다 '지속 가능성'을 반영해 리레이팅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래서, 폭락한 코스피 반도체주는
정리하면 이렇다. 이번 코스피 급락은 실적 훼손이 아니라 중동 리스크와 레버리지 ETF 투매라는 수급 충격에서 비롯됐다. 반면 선밸리에 모인 글로벌 자금의 큰손들은 7250억 달러를 '전력'과 '차세대 파운드리'라는 물리적 병목을 뚫는 데 최우선 집행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호가창의 공포와 자금의 실제 로드맵이 정반대로 벌어진 국면이다.
이 괴리는 오래가기 어렵다. 코스피는 6월 22일 최고치(9114.55) 대비 20% 넘게 빠졌는데, 이는 2022년 팬데믹(-35%), 2011년 유럽 재정위기(-26%)를 제외하면 52주 고점 대비 가장 큰 낙폭이다. 그만큼 밸류에이션 부담은 상당 부분 덜어진 셈이다.
관건은 이달 말 시작되는 글로벌 빅테크 실적이다. 7250억 달러 CapEx가 HBM·D램 주문으로 실제 확인되는 순간, 단기 수익률 게임에 나섰던 자금은 '가장 비싸고 대체 불가능한 인프라'인 AI 반도체로 회귀할 공산이 크다.
물론 AI 거품론, 빅테크의 자체 칩 확대에 따른 엔비디아 의존도 축소, 전력망 병목은 상존하는 역풍이다. 일부 투자은행 분석에 따르면 알파벳의 자유현금흐름(FCF)은 CapEx 급증으로 2025년 733억 달러(약 109조 4200억 원)에서 올해 82억 달러(약 12조 2400억 원)로 약 90% 감소할 전망이며, 메타 역시 셀사이드에서 올해 FCF의 마이너스 전환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럼에도 중장기 자금 흐름의 중심축이 AI 반도체 인프라라는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단기 변동성과 거품 논쟁은 반복되겠지만, 폭락한 코스피 반도체주의 향방을 가르는 것은 결국 호가창이 아니라 선밸리에서 오간 대화와 다음 분기 실적표다. 반도체는 이번 산업 혁명의 가장 확실한 '길목'으로 남아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