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카메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람인 만큼 그와 카메라 사이에 서 있으면 밀려나거나 치일 수 있다는 과장이다. 그만큼 기자회견과 인터뷰에 집착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공화당의 밥 돌 전 상원의원이 처음 꺼냈다. 슈머는 하원 시절부터 일요일마다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유명했다. 일요일은 큰 뉴스가 적어 월요일 신문에 실리기 쉬웠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나 지역 민원 같은 작은 사안까지 직접 발표하며 이름을 알린 것이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2026년 11월, 그 카메라 앞에 선 슈머는 더 이상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승자였다. 두 주먹을 치켜든 그는 불가능해 보이던 상원 탈환을 선언했고, 미국인에게 고통의 끝이 멀지 않았다고 약속했다. 이번 선거로 민주당은 2023년 이후 처음으로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특히 상원 승리는 극적이었다. 공화당은 연초만 해도 53대47의 다수 의석이 위협받으리라고는 거의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텍사스·사우스캐롤라이나·캔자스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내년 1월 상원의 주인이 된다. 캔자스는 94년 동안 민주당 상원의원을 배출한 적이 없는 곳이었고, 민주당은 무소속 2명을 포함해 54석을 확보했다. 슈머는 이를 상원 지형의 세대적 재편이라고 불렀다.
브루클린의 소년, 워싱턴의 거간꾼
슈머는 1950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방역업체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가정을 꾸렸다. 하버드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변호사 대신 정치를 택했다. 스물셋의 나이에 뉴욕주 하원의원이 되었고, 1981년 연방 하원에 입성해 18년을 보냈다. 1998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로는 한 번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그의 정치적 무기는 이념이 아니라 거래였다. 슈머는 진보의 깃발을 높이 드는 투사형이라기보다 표를 세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거간꾼에 가까웠다. 월가와 가까운 뉴욕을 지역구로 둔 탓에 금융권 친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념적으로 선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유연함이 그를 민주당 상원의 사령탑으로 끌어올렸다.
슈머는 2017년부터 상원 민주당을 이끌어 왔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는 원내대표로서 상원을 지휘했다. 미국 역사상 첫 유대계 상원 원내대표였다. 50대50이라는 아슬아슬한 의석 구조 속에서 그는 반도체 산업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입법을 통과시켰다. 의회 운영의 기술자로서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2024년 대선 패배와 함께 그는 다시 소수당 대표로 밀려났다. 트럼프 2기 초반은 슈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기였다. 당내 진보 진영은 그가 트럼프에 맞서는 데 충분히 싸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2025년 봄 공화당 예산안 처리에 협조한 결정은 지지층의 분노를 샀고, 지도부 교체론까지 불거졌다. 노회한 협상가의 계산이 결기 없는 타협으로 비친 것이다. 이번 승리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 설욕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경합지역 상원 경선에 개입해 당내 반발을 샀지만, 그가 영입한 후보들이 결국 승리하며 다수당 지위를 안겨 주었다. 공화당 측에 비해 선거자금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도 그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최고의 실세인가
그렇다면 슈머는 이제 워싱턴 최고의 실세인가. 답은 절반만 그렇다.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는 법안 상정 순서와 표결 일정을 쥐는 자리다. 대통령의 인사와 판사 임명에 대한 인준권도 상원에 있다. 트럼프 임기 후반 2년 동안 슈머가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견제자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이미 트럼프에게 굴종하던 상원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