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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유로화 강세에 우려 목소리…“1.20달러 돌파 땐 감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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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유로화 강세에 우려 목소리…“1.20달러 돌파 땐 감내 어려워”

유로, 올해 달러 대비 14% 급등...추가 상승시 금리 인하로 대응 가능성
2018년 5월 2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앞에 유로를 상징하는 조각품이 보인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018년 5월 2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앞에 유로를 상징하는 조각품이 보인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 내부에서 최근 유로화 강세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일부 ECB 고위 관계자들은 유로화 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할 경우 유로존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3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의 루이스 데 귄도스 부총재는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연례 콘퍼런스에서 “지나친 유로화의 오버슈팅을 피해야 한다”면서 “현재 환율인 1.18달러는 ECB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1.20달러를 넘어서면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글로벌 유로’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고, 유로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축통화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ECB 내부에서 나온 우려의 목소리다.

올해 들어 유로화는 달러 대비 14% 급등해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유럽 자산으로의 자금 이탈이 촉발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연초 예상됐던 ‘1달러 = 1유로’ 수준의 패리티(등가)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특히 미국과 유럽 간 금리 격차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유로화가 강세를 이어가는 것은 전통적인 외환시장 역학을 뒤엎은 것으로, 일부 ECB 인사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익명의 한 ECB 고위 관계자는 FT에 “유로화가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밑돌 위험이 커진다”면서 “ECB가 이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더 분명히 시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나친 유로화 강세가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T. 로우 프라이스의 토마시 비엘라덱 유럽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책 입안자들은 유로화가 점진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 나타나는 흐름은 그런 기대와 다르다”고 분석했다.

FT는 “유로화 강세가 수입 물가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 중심의 유럽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유로존과 미국의 무역 갈등 가능성까지 맞물리며 ECB의 통화정책 운 신폭이 좁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승 속도 너무 빨라"...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유로화의 최근 급등세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 속에 필요하면 ECB가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T.로우 프라이스의 비엘라덱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유로화 상승 속도가 너무 빨라 시장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면서 “이는 민간 부문 투자자들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유럽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유로화가 현재 수준인 약 1.18달러에서 6%가량 추가 상승해 연내 1.25달러에 도달할 경우, ECB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CB는 기준금리를 지난해 6월 이후 절반 수준인 2%로 인하한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여전히 이보다 두 배 이상의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높은 금리는 달러 강세를 이끌며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해왔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신트라에서 열린 연례 포럼에서 유로화 강세에 대한 ECB의 정책적 대응 여부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위한 변수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ECB의 중기 물가 목표치인 2%에 도달한 가운데, 내년에는 일시적으로 1.6%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CB 주요 인사들은 유로 강세가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과 맞물릴 경우 경기와 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TD증권의 금리 전략가 푸자 쿰라는 “유로 강세는 수출에 부담을 주고, 이는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유로존은 2010년대의 디플레이션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ECB가 환시에 개입하려 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ECB 고위 정책입안자는 FT에 “글로벌 중앙은행 간에는 일방적인 환시 개입은 금기라는 오랜 관행이 있다”면서 “조율되지 않은 환시 개입은 실패로 끝나거나, 최악의 경우 통화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들 가운데 약달러를 선호하는 입장도 있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낙관론을 피력했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마이크 리델 펀드매니저는 “유럽연합(EU)의 대규모 무역 흑자는 통화 강세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면서 “유로화 강세를 두고 정책당국이 불만을 제기할 명분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ECB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이자 크로아티아 중앙은행 총재인 보리스 부이치치도 “현재 유로화 수준은 도입 당시와 유사하고, 지난 25년간 더 강세였던 시기도 많았다”면서 “지금의 환율 수준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