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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H-1B 비자 수수료 인상에 인도 IT 대기업 주가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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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H-1B 비자 수수료 인상에 인도 IT 대기업 주가 급락

미국 고급인력 비자 50배 인상에 글로벌 인재 쟁탈전 격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H-1B 비자 수수료 인상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H-1B 비자 수수료 인상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기존 2000~5000달러(270~670만 원)에서 10만 달러(13400만 원)50배 올리면서 사실상 해당 비자 발급을 막자, 인도를 비롯한 주요국들이 자국으로의 '두뇌 유입'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3(현지시각)24일 연이은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정책 변화가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수료 50배 인상으로 사실상 문 닫힌 H-1B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H-1B 비자 프로그램의 "체계적 남용"을 근거로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치는 지난 21일 오전 01(현지시각)부터 시행됐고, 1년 후 만료되지만 트럼프 행정부 판단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훌륭한 일꾼이 필요하다""이 조치가 바로 그것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당초 혼란을 피하려고 이 수수료가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며 기존 비자 보유자나 갱신 신청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이 처음에 연간 수수료라고 언급한 것이 일회성 수수료로 바뀌면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 같은 주요 기술기업들이 직원들에게 긴급히 귀국을 지시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미국 내 H-1B 비자 보유자는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이 중 인도인이 약 28만 명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H-1B 비자는 과학자,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전문기술직 외국인에게 처음 3, 연장해서 최대 6년까지 미국 체류를 허용한다. 의회가 허용하는 연간 85000개 비자는 추첨 방식으로 배정된다.

카토연구소의 데이비드 비어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만 달러라는 수수료는 경제학을 모르는 중상모략"이라며 "이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조치는 전체 프로그램을 없애면서도 없앤다고 말하지 않는 교묘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인도의 엇갈린 반응...기대와 우려가 교차


인도 정부와 기업계는 이번 조치를 두고 복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트럼프 발표 직후 뉴델리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의 인재들이 인도에 와서 혁신하고 설계할 수 있다""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가 승자"라고 말했다.

인도 인공지능 기업을 운영하는 아르나브 굽타는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실리콘밸리의 혜택을 위해 떠나는 것을 보는 데 지쳤다""기업가로서 나의 스타 개발자들을 더는 잃지 않게 될 수 있어 속으로 흥분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쇼카대학교 경제학과장 아시위니 데시판데 교수는 "인도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선택권이 없어서만 머물 수 있다""인도가 그들의 전문성으로부터 혜택을 얻으려면 그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많은 인도 전문가들은 자국으로의 단순한 복귀보다는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같은 제3국으로의 이동을 생각하고 있다. 샌호세에서 로봇공학 연구를 하고 있는 시밤 바르드와지 엔지니어는 "인도 전체에서 내가 하는 로봇공학 연구를 하는 곳이 없다"며 고국보다는 싱가포르를 차기 거주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인도에서 창업을 시도했지만 "사업하기 편한 환경이 아니다"라며 법 제도와 관료주의 문제를 들었다.

100만 명 대기자 발생...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 재편


H-1B 프로그램은 수십 년간 양당의 비판을 받아왔다. 비판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미국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연간 6만 달러(8400만 원)라는 낮은 임금으로 일할 의사가 있는 해외 인력을 끌어들인다고 주장한다. 이는 보통 10만 달러(14000만 원) 이상을 받는 미국 기술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다.

데이비드 비어 연구원은 "숙련 비자의 가장 긴급한 문제는 상한선"이라며 "1990년 어떤 의원이 모자에서 뽑아낸 숫자 때문에 말 그대로 수십만 명의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H-1B 노동자와 가족 100만 명 이상이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는 글로벌 인재 유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최근 젊은 과학기술 인력을 위한 새로운 비자를 발표했고, 캐나다와 유럽 국가들도 숙련된 인도 인력 유치에 나서고 있다.

벤처캐피털 펀드 20VC의 설립자 해리 스테빙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럽 혁신에 가장 큰 위협은 인재 손실"이라며 "트럼프가 유럽에 가장 큰 기회를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美-인도 기술기업들의 딜레마


H-1B 비자를 가장 많이 활용해온 미국 기술기업들도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아마존이 14000명 이상의 H-1B 비자 보유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구글이 각각 40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멕시코 출신으로 과거 H-1B 비자 보유자였던 레온 크라우제 언론인은 워싱턴포스트와의 대화에서 "미국이 중국의 기술력, 생산력과 경쟁하기 위해 엔지니어, 과학자, 기업가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순간에 트럼프는 문을 닫기로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인도 남부 텔랑가나주는 미국으로 떠나는 기술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지역이다. 이 지역 출신 기술자들을 '텔루구 기술자'라고 부르는데, H-1B 비자로 미국에 가려는 이들이 이번 정책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레반스 레디 텔랑가나 주총리는 "텔루구 기술자들의 고통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인도 정부가 워싱턴에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도 정보기술 서비스 업체인 타타컨설턴시서비스, 위프로, 인포시스는 이번 주 주가가 급락했다. 이들 기업은 미국 기업들의 정보기술 업무를 대신해주는 회사들로, 직원들을 H-1B 비자로 미국에 파견해 일하게 하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