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수사 중단 요구하는 틸리스 의원이 인준 최대 변수… 5월 의장 공백 현실화 우려
'고금리·저규제' 조합 예고한 워시 지명… 한국 수출기업·채권시장 대비해야
'고금리·저규제' 조합 예고한 워시 지명… 한국 수출기업·채권시장 대비해야
이미지 확대보기8년 전 놓쳤던 의장 자리, 이번엔 가능한가
워시는 트럼프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2017년 첫 번째 임기 당시에도 의장 후보군에 이름이 올랐으나 최종 낙점은 파월에게 돌아갔다. 8년 만의 재도전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경제 고문을 지낸 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연준 이사로 재직한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중앙은행 내부에서 직접 경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사직을 떠난 뒤에는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운영하는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Duquesne Family Office)에서 파트너로 활동하는 한편,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를 거점으로 통화 정책 관련 연구와 기고를 이어 왔다.
시장에서 워시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은행 자본 요건 완화에 우호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온 인물이다.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이 지난해 12월 비공개 회의에서 "케빈 워시는 훌륭한 의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는 사실은 금융업계의 기대감이 어느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워시가 에스티 로더 창업가 일가인 론 로더 전 회장의 사위라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더욱 두껍게 하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인준 키맨으로 부상한 틸리스… '파월 수사'가 핵심 변수
워시의 인준 앞에 놓인 가장 높은 벽은 공화당 내부에 있다. 상원 은행·주택·도시문제 위원회 소속인 톰 틸리스(Thom Tillis) 의원이 "법무부가 파월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를 즉각 중단하지 않는 한 어떤 연준 의장 후보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연준 워싱턴 본부 리모델링 과정에서 불거진 예산 초과 문제를 놓고 파월의 의회 증언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연방 대배심이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한 상태로, 틸리스 의원은 이를 "연준 독립성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자 검사 개인의 독단적 행태"라고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번 임기를 끝으로 정계를 떠날 예정인 그로서는 정치적 셈법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문제는 구조적이다. 워시 지명안이 상원 본회의 표결에 오르려면 공화당 13명과 민주당 11명으로 구성된 은행위원회 문턱을 먼저 넘어야 한다. 틸리스 의원이 반대표를 행사하거나 의사 진행을 막을 경우, 위원회 통과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팀 스콧 상원 은행위원장은 "틸리스가 결국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낙관했고,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청문회는 예정대로 진행되며, 수사가 반드시 기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틸리스 의원은 현재까지 어떠한 중재안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5월 공백 우려… '의장 없는 연준'이 FOMC 운영하나
파월 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15일 종료된다. 그 전후로 3월·4월·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예정돼 있다. 인준이 늦어지면 의장 공백 상태에서 금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연준은 의장 공백기에도 기술적으로는 부의장 주재로 FOMC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금리 결정의 최고 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내려지는 정책 결정은 시장 신뢰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2013~2014년 버냉키-옐런 교체기와 달리, 이번에는 수사라는 사법적 변수가 겹쳐 있어 시장의 불확실성은 한층 크다.
워시의 '건전한 화폐' 철학… '고금리·저규제' 시대 예고
워시의 통화 정책 철학은 그가 스탠퍼드 후버 연구소와 각종 매체 기고를 통해 일관되게 밝혀 온 '건전한 화폐(Sound Money)' 원칙으로 요약된다. 연준의 과도한 자산 매입(양적 완화)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훼손하고 잠재적 인플레이션 위험을 키운다는 것이 핵심 논지다.
2011년 이사직 사임 당시 그는 "연준이 경제의 모든 문제를 떠안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런 원칙론적 입장을 감안하면, 워시가 주재하는 FOMC는 물가 상승 징후에 시장 예상보다 훨씬 단호한 금리 인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규제는 정교해야지 무거워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지론에 따라 은행 자본 요건을 포함한 금융 규제는 대폭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는 엄격하게 유지하되 금융업의 자율성은 넓히는 이른바 '고금리·저규제' 조합이 새로운 연준의 기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시장, 수출·채권·환율, 삼중 변수 대비해야
워시 체제의 미국 연준이 출범한다면 한국 경제에도 복합적 파장이 예상된다.
첫째, 금리 변수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수록 달러 강세가 유지되고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진다. 수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일시적 이점이 있지만, 달러 부채를 안고 있는 국내 기업의 이자 부담은 가중된다.
둘째, 채권 시장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를 경우 한국 국채 금리도 동반 상승 압력을 받는다. 현재 고금리 환경 아래 이미 부담이 큰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추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셋째, 반도체·자동차 등 대미 수출 기업은 미국 금융 규제 완화에 따른 미국 내 투자 활성화 수혜를 간접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단, 연준의 독립성 논란이 달러 신뢰도 자체를 흔들 경우 이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향후 금리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미국 연준의 혼란이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장 공백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은 신흥국 통화의 변동성을 전반적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 지명은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의 방향타를 본격적으로 틀겠다는 신호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릴 만한 원칙론자를 중앙은행 수장에 앉히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문제는 정작 그 결정을 완성해야 할 상원에서 균열이 먼저 일어났다는 점이다.
파월 수사라는 이례적 변수, 틸리스의 거부권, 5월 임기 만료의 삼각파도가 겹쳐 있다. 워시의 인준이 순탄하게 마무리되더라도, 이 과정에서 노출된 미국 통화 정책 거버넌스의 불안정성은 글로벌 시장에 오래 각인될 것이다. 서울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의 담당자들이 이 시나리오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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