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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일 버틴 英 핵잠수함… ‘안보 신화’ 뒤에 숨겨진 3가지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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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일 버틴 英 핵잠수함… ‘안보 신화’ 뒤에 숨겨진 3가지 균열

6개월 잠항이 ‘뉴노멀’ 된 영국… 노후 함정 교체 지연이 부른 안보 리스크
2030년대 초반까지 지속될 ‘전력 공백’… 한국 방산에 던지는 MRO의 교훈
최근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205일간의 무중단 작전을 마치고 복귀했다. 영국 해군 역사상 최장 잠항 기록이다. 지난해 9월 출항해 6개월 넘게 수중 작전을 수행한 이번 임무는 기술적 성과인 동시에, 함정 노후화와 전력 교체 지연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205일간의 무중단 작전을 마치고 복귀했다. 영국 해군 역사상 최장 잠항 기록이다. 지난해 9월 출항해 6개월 넘게 수중 작전을 수행한 이번 임무는 기술적 성과인 동시에, 함정 노후화와 전력 교체 지연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지=제미나이3
영국 해군에 화려한 기록 이면에 위기 신호가 켜졌다. 영국 해군이 자랑하던 핵잠수함의 205일 작전 기록이 '승전보'가 아닌 사실상 '경고장'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극한으로 쥐어짠 해상 억제력의 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205일간의 무중단 작전을 마치고 복귀했다. 영국 해군 역사상 최장 잠항 기록이다. 지난해 9월 출항해 6개월 넘게 수중 작전을 수행한 이번 임무는 기술적 성과인 동시에, 함정 노후화와 전력 교체 지연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록이 영국 해군의 억제력이 한계치까지 쥐어짜지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경고한다.

‘6개월 잠항은 효율 아닌 생존의 결과


18(현지시각) 영국 해군 전문 매체 네이비 룩아웃(Navy Lookout)에 따르면, 이번 임무는 승조원의 정신적·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동시에 함정의 수명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인 사례다. 통상 3~4개월을 기준으로 설계된 뱅가드급 잠수함에 200일 치가 넘는 보급품을 욱여넣고, 승조원들은 6시간마다 교대하는 ‘2교대 시스템6개월간 반복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수중 보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무기한 잠항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보급품 저장 공간과 승조원의 심리적 피로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분석한다. 1980년대 8주가 긴 작전으로 통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의 작전 강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중됐다.

200일을 넘는 잠수함 작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의지와 훈련으로 돌파하는 극한의 과정이다. 수면 리듬 붕괴로 판단력이 최대 20% 저하되고, 100~150일 구간엔 무력감과 대인 갈등이 정점에 달하는 '3분기 현상(Third-Quarter Phenomenon)'이 엄습한다. 뱅가드급 승조원들이 205일을 버텨낸 것은 개인의 강인함이 아니라, 철저히 통제된 일상과 공동체적 유대가 생리적 붕괴를 간신히 막아낸 결과다.

16년 걸리는 건조… 드레드노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 같은 장기 순찰이 정착된 근본 원인은 영국 해군의 전력 공백이다. 2010년 정부가 차세대 드레드노트(Dreadnought)’ 프로그램 승인을 5년 지연시킨 여파가 15년이 지난 지금, 현장 부대의 과부하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업에서 '첫 강재 절단(First Steel)'은 잠수함의 뼈대를 만드는 시작점이다. 영국 차세대 핵잠수함 드레드노트급은 2016년 첫 강재 절단 이후 실전 배치까지 무려 16년이 소요된다. 과거 레졸루션급이 4, 뱅가드급이 8년 걸린 것과 비교하면 효율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건조 속도는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그 공백을 노후 뱅가드급이 무리하게 버티는 구조는 영국 해군 억제력의 경고등이다.

함정 유지보수 인프라 부족까지 겹치면서, 한 대의 함정이 작전에 투입되는 동안 다른 함정은 장기 정비에 묶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일정 차질이 아니라, 영국 해군의 전략적 억제력이 한계치까지 쥐어짜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방산이 주목할 세 가지 지표와 MRO의 교훈


영국 뱅가드급 사례는 한국 해군과 방산에 '건조보다 유지(MRO)가 핵심'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한국이 KSS-III 등 차세대 잠수함 전력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건조에만 매몰될 경우, 영국처럼 전력 공백과 정비 지연의 늪에 빠질 위험이 크다.

방산 측면에서 글로벌 MRO 시장은 새로운 수출 활로다. 한국은 조선업 역량을 바탕으로 함정 건조부터 정비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토털 해군력'을 갖춰야 한다.

투자자와 정책 결정자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는 세 가지다.

첫째, 영국 차세대 잠수함의 실제 건조 공정률과 예산 집행 효율성이다.

둘째, 뱅가드급의 실제 정비 주기와 작전 투입 간격(가동률)이다.

셋째, 나토(NATO) 회원국들의 해군 전력 강화 속도와 한국형 MRO의 시장 진입 가능성이다.

희생은 기록으로 남지만, 그 희생을 구조적으로 강요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 안보의 토대가 될 수 없다. 영국은 지금 전력 교체의 타이밍을 놓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한국 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려면, 단순히 새로운 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오래가는 배를 관리하는 MRO 역량에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