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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선, 수주 넘어 생태계 경쟁…해운까지 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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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선, 수주 넘어 생태계 경쟁…해운까지 결속

정부, 조선-해운 상생협의체 출범…국적선 공동발주 추진
LNG·친환경선·AI 조선소까지 확대…중국 추격 속 기반 강화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수주 호황을 이어온 국내 조선업의 경쟁 축이 단순한 선박 계약 확보에서 해운·기자재·금융을 함께 묶는 산업 생태계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고부가 선박 중심의 수주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중국의 물량 공세와 친환경 선박 전환, 기자재 공급망 부담이 맞물리면서 조선사 혼자 버티는 방식만으로는 중장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와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2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조선-해운 상생발전 전략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조선과 해운의 공동 경쟁력 강화를 위한 'W.A.V.E.' 전략을 발표했다. 협의회에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와 한국해운협회를 중심으로 조선사, 해운사, 정부, 학계가 참여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술개발과 실증, 발주, 금융, 제도 개선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상시 협력 채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국적선 공동발주다. 국내 해운사가 필요한 선박 수요를 모으고, 국내 조선소가 이를 안정적인 일감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해운사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선박을 비교적 경제적인 조건으로 확보할 수 있고,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는 예측 가능한 물량을 바탕으로 생산과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최근 고려해운의 1900TEU급 컨테이너선 6척과 HMM의 2800TEU급 컨테이너선 10척이 HD현대중공업에 공동 발주된 사례도 이 같은 협력 모델의 출발점으로 거론된다.

조선업계가 생태계 경쟁에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수주 호황 이후의 불안에 있다. 한국 조선업은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과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대규모 내수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발주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단기 수주 실적만으로는 격차를 유지하기 어렵고, 친환경 연료 추진선과 자율운항 선박, 인공지능(AI) 기반 생산공정 등 차세대 기술까지 함께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도 기술 초격차 확보를 별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올해 K-조선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32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원 방향은 친환경 선박, AI 기술, 중소조선소 역량 강화 등 3개 축이다.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연료 추진 기술과 AI 조선소,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키워 고부가 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운과 조선을 묶는 전략은 에너지 안보와도 맞닿아 있다. LNG 수송 체계는 단순한 운송 사업을 넘어 국가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업계가 LNG 운반선 협력과 국적선 확보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건조한 선박을 국내 해운사가 운용하면 조선 일감과 해운 경쟁력, 에너지 수송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 공동발주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선가와 금융 조건, 납기, 표준 선형 개발이 함께 맞아야 한다. 해운사는 운임 변동과 투자 부담을 고려해야 하고, 조선사는 고부가 선박 중심의 수주 전략과 중소형 국적선 발주 사이에서 생산 여력을 조정해야 한다. 기자재 업체의 인력난과 공급망 부담도 생태계 확장의 병목으로 꼽힌다.

결국 K-조선의 다음 경쟁력은 개별 조선사의 수주 능력보다 산업 전체를 묶는 실행력에 달려 있다. 수주 호황을 일시적 성과로 끝내지 않으려면 조선사와 해운사, 기자재 업체, 금융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가 조선-해운 협력체계를 꺼내 든 것도 세계 1위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안정적인 발주 기반과 공급망 체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조선업을 단순한 상업적 비즈니스가 아닌 '국가 안보 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며 "한국 조선업이 흑자로 돌아선 만큼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