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HBM 병목에 美 개입 무력화… 메모리 3사 ‘가격 결정 시대’ 열었다

글로벌이코노믹

HBM 병목에 美 개입 무력화… 메모리 3사 ‘가격 결정 시대’ 열었다

‘과점 3강’ 공급 규율 확인… 가격 수용자에서 주도자로 완벽한 체질 전환
UBS "2027년 수요가 공급 17%P 초월"… 구조적 공급 제약이 만든 역대급 슈퍼사이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과점한 한미 3개사가 미국 정부의 이례적인 시장 개입 움직임에 공동 제동을 걸었다. 사진=X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과점한 한미 3개사가 미국 정부의 이례적인 시장 개입 움직임에 공동 제동을 걸었다. 사진=X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과점한 한미 3개사가 미국 정부의 이례적인 시장 개입 움직임에 공동 제동을 걸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은 미 정부가 추진하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통제와 생산 물량 강제 배정 조치가 시장 왜곡을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미국 정계가 국방물자생산법(DPA) 등을 동원해 자국 자동차 산업 등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려 하자 경쟁사들이 이례적으로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이번 공동 대응은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의 주도권이 정부가 아닌 제조사로 완전히 넘어왔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메모리 3사의 암묵적 공급 규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역대급 슈퍼사이클의 고착화를 이끄는 결정적 트리거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행정 권한 동원하려는 美 정계와 3사의 전면적 판도 변화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톰스하드웨어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참여하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트럼프 행정부에 메모리 시장 개입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버니 모레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미국 자동차 업계에 메모리 반도체를 최우선 공급하라고 요구하자 업계가 집단 반발했다. 미국 정계는 과거 팬데믹 시기 차량용 반도체 대란 때처럼 DPA를 발동해 특정 산업에 우선 구매권을 부여하는 행정 명령 방식의 개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는 당시의 DPA 집행이 공급망 혼란만 가중했을 뿐 실효성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메모리 제조사들은 서한에서 가격이나 생산 능력을 강제하는 정부 개입이 공급 부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위적인 물량 배정은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인프라 투자를 위축시키고 시장의 자율적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제조사들은 통제 대신 정보통신기기(IT) 소비세 공제 같은 우회 지원책을 요구하며 공급량 통제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카르텔 준하는 과점 3사의 선언… 가격 결정자로의 체질 전환


시장이 주목하는 지점은 글로벌 메모리 DRAM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과거 치열한 치킨게임으로 경쟁사를 무너뜨리던 이들이 공동 전선을 편 것은 단순한 규제 반대를 넘어선다. 가격 상승 국면에서 공급 확대보다 가격 방어를 우선시하고, 공급 규율을 철저히 유지하겠다는 암묵적 공조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공급 과잉 국면에서 철저히 가격 수용자(Price Taker)에 머물던 메모리 산업 구조가 시장 주도권을 쥔 가격 결정자(Price Setter)로 완전히 뒤집혔음을 뜻한다. 미 정부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도 제조사들이 가격 주도권을 잃지 않고 오히려 슈퍼사이클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펀더멘털을 증명했다는 평가다.

HBM 병목이 만든 비대칭 상승장… 과거 사이클과의 단절


투자은행 UBS는 지난 3(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공급 부족이 오는 20282분기까지 지속된다고 전망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글로벌 메모리 물량을 흡수하면서 내년 메모리 수요 성장률은 36.2%에 이르는 반면, 공급 성장률은 19.3%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수요가 공급을 16.9%포인트 웃도는 수치다.

이에 따라 UBS3분기 DRAM 계약 가격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32%로 두 배 가까이 상향 조정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역시 3분기 DRAM 가격이 전 분기보다 18% 상승하며 심각한 쇼티지를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상승장은 범용 DRAM 중심이었던 2017~2018년 슈퍼사이클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시장 전체가 고르게 성장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초고부가 시장이 이끄는 더 강하지만 더 좁은상승장이다.

HBM은 실리콘관통전극(TSV) 공정과 첨단 패키징(CoWoS) 공정의 극심한 제약으로 인해 설비를 늘려도 대량 공급이 불가능하다. 특히 첨단 패키징 공정은 대만 TSMC 중심의 제한된 생산 능력으로 인해 공급 병목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상태다.

빅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수년짜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는 이유다. 반면 일반 DRAM은 소비자용 피시와 스마트폰 수요 회복세가 더뎌 공급 부족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인공지능용 핵심 병목 구간인 HBM이 전체 시장 분위기와 단가를 견인하는 비대칭적 수급 구조다.

하방 압력… 기관 독자가 주시해야 할 4대 리스크


다만 역대급 호황 전망 속에서도 주가의 연속성을 제약할 수 있는 하방 요인은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호실적에만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다음 네 가지 리스크 시나리오를 동시에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빅테크 설비투자(CAPEX)의 조기 둔화 가능성이다. 인공지능 서비스의 수익화 모델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 경우 빅테크 기업들이 내년 이후 인프라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이는 HBM 수요 급감으로 직결된다.

둘째, 제조사 간 HBM 증설 경쟁 과열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대량 양산 수율을 확보하고 공급을 늘리기 시작하면 공급 부족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셋째, 평균판매단가(ASP) 급등에 따른 고객사 저항이다. 메모리 단가가 단기간에 지나치게 오르면 완제품 제조사들이 선제적으로 재고 축적을 중단하고 구매를 이연하는 과거부터 늘 반복되어 온 전형적인 위험 패턴이 재발할 수 있다.

넷째, ·중 지정학적 갈등과 규제 변수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인공지능 반도체와 고성능 메모리 수출 통제 강도를 높일 경우, 중국 시장으로의 수출 길이 막히며 급격한 재고 누적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구조 해석과 투자 프레임… 산업 권력 이동의 서막


이번 사태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할 만큼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번 상승장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산업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앞으로의 투자 판단은 빅테크의 독점적 수요와 첨단 공정 병목이 유효한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정부의 개입 시도가 무력화되는 흐름 속에 제조사의 가격 결정권이 얼마나 공고하게 유지되는지가 핵심 기준이다. 단기적으로는 고용량 HBM의 분기별 단가 유지 여부와 빅테크 기업들의 설비투자 가이드라인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완제품 수요 둔화에 따른 일반 DRAM 가격의 하방 지지력을 동시에 확인하는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거품론에 따른 수요 둔화와 각국의 지정학적 규제 변수가 최종 리스크로 남아있다. 공급 통제력을 쥔 3강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이익의 질은 과거와 전혀 다를 것이다. 이번 슈퍼사이클 본질은 일시적인 수요 폭발이 아니라 제조사들이 쥐고 있는 통제된 공급에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