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0년물 3년 만에 최고·日 10년물 30년 만에 3% 돌파
유가·국가부채에 AI 투자용 회사채까지 가세…'채권 자경단' 재등장
유가·국가부채에 AI 투자용 회사채까지 가세…'채권 자경단' 재등장
이미지 확대보기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주요국의 막대한 국가부채가 글로벌 채권시장을 압박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투자에 나선 미국 빅테크의 대규모 자금 조달까지 국채 매도세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와 거대 기술기업이 동시에 막대한 돈을 빌리면서 투자자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글로벌 국채 가격 하락이 이어지면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주요국의 차입 비용이 수년에서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금리 기준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3년 만의 최고치까지 상승했다. 시장이 심리적 경계선으로 보는 5%에도 가까워졌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는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했고 영국 10년물도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채금리가 상승한다는 것은 채권가격이 하락한다는 뜻이다. 국채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기업·가계의 각종 대출과 금융자산 가격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상승세가 지속되면 실물경제와 증시에 부담이 커진다.
◇유가·국가부채에 AI 회사채까지 '삼중 압박'
현재 채권시장을 압박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미국과 이란이 다시 군사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브렌트유는 2일 한 달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도 2023년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물가 압력이 커지고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장 참가자들이 금리 인상에 베팅하면서 특히 단기 국채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각국의 막대한 국가부채가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거치면서 지출과 차입을 크게 늘렸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용 증가, 국방비 확대 필요성까지 겹쳐 앞으로도 정부의 자금 수요가 쉽게 줄어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채시장에는 또 다른 대형 차입자도 등장했다.
AI 인프라 구축 경쟁을 벌이는 미국 빅테크들이 막대한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면서 정부와 민간기업이 동일한 투자자 자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나카 마쓰자와 수석 매크로 전략가는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상당히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는 점이 시장 전반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투자 붐이 주식시장에서는 성장 기대를 높이고 있지만 채권시장에서는 막대한 신규 회사채 공급을 통해 금리 상승 압력을 더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채권 자경단' 돌아왔나…재정정책 압박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금융시장에서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다시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채권 자경단은 정부가 과도한 재정적자와 부채 확대 정책을 펼칠 경우 국채를 팔거나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해 정부에 재정 규율을 강제하는 투자자들을 뜻한다.
이 용어를 1980년대 처음 사용한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대규모 정부 재정적자에 반발한 채권 자경단이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현재 국채금리가 정부와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입장도 밝혔다.
재정 문제에 대한 경계는 주요국 정치 일정과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
앤디 번햄 총리가 이끄는 영국 새 정부는 오는 10월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고 프랑스도 차기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을 앞두고 있다. 일본에서도 국채금리 급등으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공격적인 투자계획과 재정 부담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각국 정부가 성장 지원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싶어도 국채시장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 정책 여력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美 10년물 5%가 분수령…베선트 대응 주목
시장에서는 특히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 5%가 중요한 분기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채금리가 5%까지 오르면 안전자산인 채권의 투자 매력이 크게 높아지는 반면 미래의 성장 기대를 반영해 높은 가격을 받는 기술주에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야데니 대표는 미국 10년물 금리가 5%에 도달할 경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장기금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단기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장기 국채를 되사는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에도 장기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다시 19년 만의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마이클 멧커프 매크로 전략 책임자는 현재 채권 매도세 자체는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높은 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가계에도 부담이 전이될 수 있다. 국채금리 상승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주식의 상대적인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연준·ECB 추가 인상 베팅 확산
채권시장의 다음 관심은 중앙은행으로 이동하고 있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주 매파적인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충분한 진전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9월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급격히 강화됐다.
금리 변화에 민감한 미국 2년 만기 국채금리는 18개월 만의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시장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 주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그다음 주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약 70%로 반영하고 있다.
결국 현재 글로벌 채권시장의 매도세는 한 가지 원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주요국의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지출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AI 인프라 경쟁을 벌이는 빅테크까지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면서 투자자들의 돈을 놓고 정부와 기업이 경쟁하는 새로운 압력까지 더해졌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선에 접근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과 정부의 재정정책, AI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맞물리며 글로벌 채권시장의 긴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