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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50년 역사' 녹은 창비시선 500호 기념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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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50년 역사' 녹은 창비시선 500호 기념 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과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창비시선 500호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안희연·황인찬/창비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안희연·황인찬/창비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신경림 외/창비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신경림 외/창비

시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소식이 자주 들려오는 요즘이다. 올해 상반기는 가히 시의 '한창때'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혜순 시인은 지난 4월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의 독자에게로 나아가는 한국 시의 힘을 확인했다. 한국의 양대 시선집이라 불리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그리고 '창비시선'은 올해 각각 600호와 500호의 출간 소식을 알리며 시심에 활기를 더했다.

이 중 창비시선은 1975년 3월 신경림 시인의 시집 ‘농무’를 처음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49년째를 맞이했고, 시선집으로는 500호를 맞이했다. 창비시선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신작 시선집을 표방한 시집이기도 하다. 500호를 맞이한 기념으로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과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을 함께 펴냈다.

종합출판사인 창비의 연원은 1966년 1월에 창간된 계간 ‘창작과비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간 편집인이었던 백낙청 등의 주도로 시작된 ‘창작과비평’은 최초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자리한 문우출판사의 이름을 빌려 발행됐다. 이후 창비는 1974년 ‘창비신서’, 1975년 ‘창비시선’, 1977년 ‘창비아동문고’를 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단행본을 출판한다. 이후에도 창비는 다양한 도서들을 출간했고, 2000년대에는 시·소설·평론 부문에 수여하는 창비신인문학상을 제정해 주목할 만한 신예를 적극 발굴하고 있다.

창비 출판사는 1974년 창비신서 여름호에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인 신경림 시 ‘농무’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신경림 시집 ‘농무’ 증보판을 '창비시선'으로 간행한다. 이것이 창비시선의 시작이다. 이 ‘농무’는 출간 다음 달에 비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당시 김수영 시인의 시집이자 민음사의 시리즈 시집인 '오늘의 시인총서' 1호 ‘거대한 뿌리’와 함께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다. 당시까지 시집은 대개 한정된 수량을 자비 출판해 읽는 문화였지만,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부터 창비시선 그리고 문지시인선까지 출판사의 시선 시리즈 기획이 이어지며, 시가 대중적인 호응을 얻는 전환점이 되었다.

창비시선의 500번맞이를 기념하는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은 창비시선의 401번부터 499번 시집에서 한 편씩을 선정해 골라 엮었다. 엮은이로는 돋보이는 감수성으로 요즘 독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동시에 시에 관해서라면 눈 밝기로 정평이 난 안희연·황인찬 두 시인이 나섰다. 표제는 출간 1주도 안 남은 시점에 고심 끝에 낙점됐다. 이대흠 시인의 시 ‘목련’이 그 출처다.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에 포함된 안미옥, 정현우, 최지은, 유혜빈, 전욱진, 한재범 등 스물한 명의 시인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 첫 시집인 신예들이다. 창비시선이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한 세대의 풍경과 발맞추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정호승과 같이 우리 문단의 대표 시인들의 시도 함께 수록돼 있어, 기존의 가치를 계승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별시선집인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에는 창비시선 50년의 역사가 녹아있다.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비시선의 시를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가려 뽑은 시선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의 저자인 창비시선 400번대의 시인들이 창비시선 전체 작품을 추천대상작으로 한 작품을 한 권에 모았다. 송종원 문학평론가는 “한국 시의 저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땅에서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갈망해온 존재들의 힘을 증명한다”고 특별시선집을 여는 글에 언급하기도 했다. 대중과 호흡해 오며 한국 시의 중추를 이뤄온 창비시선. 기념시선집과 특별시선집에서 시의 세계를 앞으로도 꾸준히 밝혀갈 힘을 읽는다.

이주호 교보문고 시·에세이·여행 MD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