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1 09:12
최근 MBTI와 관련하여, SNS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다. 직관형(N)인 사람들은 머리를 감을 때 흑역사부터 시작하여 기후변화까지 걱정하는 반면, 감각형(S)인 사람들은 그저 머리만 감을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만만치 않은 N으로서, 머리를 감을 때면 내 인생의 모든 흑역사를 계속해서 끄집어낸다. 노력해서 떠올리는 것도 아닌데, 샤워기의 미지근한 물을 머리에 대는 순간 파블로프의 개처럼 온갖 흑역사가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 중의 80% 정도는 사회생활 초년생일때의 일화이다. 모 대기업 재직 시절, 퇴사할 때까지 대리님을 ‘ㅇㅇ이 언니'라고 불렀던 일. 자리에 앉아서 팀장님께 내 자리까지 ‘오라고' 호출했던 일. 사수, 대2024.02.22 10:47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바로 내가 후자의 사람이다. 나는 고만고만했다. 나만의 특별한 친구가 있지는 않았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 부모와 교사의 손이 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만의 친구’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체육 시간에 짝을 지을 때, 현장학습 고속버스에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같은 공백에 나는 자주 얼굴이 빨개졌다.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사이의 시간이 부끄러웠다. 그 나이에는 혼자인 게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 늘 나만의 친구,2024.02.08 12:44
아무래도 이런 부탁은 좀 그렇겠죠? 아무래도 구성원들이 피곤하니까요. 머쓱하게 회의실을 나왔다. 교육 전에 서베이를 돌리는 건, 그리고 프로젝트 전에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하는 건, 뭐 대단한 걸 해줄 것처럼 FGW(Focus Group Workshop)를 하는 건 아무래도 저 혼자 들떠서 오버하는 거겠죠? 아무래도요. 아무렴요.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상대방도 뒷맛이 씁쓸해 보였다. 우리는 "아무래도요, 아무렴요, 아무라 해도요." 하고 헤어졌다. 종종 어떤 교육과 프로젝트는 사실 FGI, FGW, 서베이 없이 시작되기도 한다. 내가 많이 듣는 말로는 '저희가 옛날에 조사해둔 자료가 있는데 그거 보시면 됩니다' 또는 '비슷한 조사 해둔 게 있2023.12.26 14:08
'Gen-Z 기기괴괴'가 요즘 화제다. 그런 이야기가 돌 때마다 괜스레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는 내가 그보다 더한 신입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시작을 최강의 보수 조직 모 계열사 인턴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까만 정장을 입고 사장님 취임식에 참석할 때, 나는 혼자 노란색 원피스를 입곤 꾸벅꾸벅 졸았다. 리더들과 친해지고 나서는 퇴사할 때까지 그들을 모두 '언니'라고 불렀다. 물론 업무시간에도 '언니 제 자리로 와봐요!'라고 그들을 호출했다. 그들의 성대모사를 연습해서 눈앞에서 그들을 따라 하며 특유의 말투를 놀렸고,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고, 주말에 만나서 놀자고 말했다. 상무님이 점심 같2023.09.22 15:09
‘아폴로 신드롬’이란 바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바보 같은 결과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정말 뛰어난 인재들끼리 모이면 엄청난 결과가 나올까?’라는 가설이 진짜인지 궁금한 학자가 있었다. 그래서 유능한 스타 플레이어를 모아 팀을 만들고,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보도록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팀보다 못한 결과를 냈다. 너무 잘난 사람들끼리 모이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자존심을 걸고 비생산적인 토론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여러 해 동안 이 실험을 계속 반복했는데도, 전체 아폴로팀 스물다섯 개 중 평범한 팀과 겨루어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우승한 팀은 세 팀밖에 없었다. 혹시 우리 주변에2023.07.05 08:29
<일타 스캔들>(tvN)이 아쉬운 결말로 끝났다. <일타 스캔들>은 대입 일타 강사와 그와 대조되는 반찬가게 사장이 사교육 전쟁터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사회에 깊은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일타 스캔들>에서는 ‘의대’라는 목표를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학생들은 이를 맹목적으로 욕망한다. 출신 고등학교를 기재한 과잠을 만든다든지, ‘에타’에서 오가는 끊임없는 ‘편 가르기’를 통한 순위 매기기가 어디서 왔는지, 결국 이러한 경향이 사회에도 연장 적용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환경에서 그렇게 길러졌으니 이 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계속해서2023.06.28 08:25
드라마나 영화에 멋지게 나오는 리더들은 다 조금 별로인 구석이 있다. 일단 매일 자리를 비우고 연애만 한다.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서 한다는 일은 독설이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엄청나게 불안해진다. 저 한마디로 돌연 모든 게 부족하고 불확실해지는 거니까. 사회 초년생 때는 그런 리더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상기시켜 주었고, 옥의 티를 찾아주었다. 그런데 뒤통수가 얼얼해진 다음 배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남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꼼꼼하지 못하지.’ ‘앞으로 큰일에서 실수하면 어쩌지.’ 회사 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무수한 입2023.06.07 08:58
사수 복이 꽤 좋았던 나도 복병을 만난 적이 있다. 사수는 본인이 없으면 약 500명의 임직원을 가진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객관적으론 그냥 능력이 없었다. 사수는 본인을 속이 꽉 찬 감자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나는 그를 질소 반 감자 반으로 과대 포장된 감자칩이라 생각했다. 과대 포장된 감자칩에 분노한 시민들을 아는가? 그들은 기어코 갑자칩을 엮어 보트를 만들고, 한강을 건넜다. 차라리 사수가 감자칩이라면, 사수를 엮어 한강을 건너가고야 말 텐데. 그래서 결단코 그의 무능을 증명해낼 텐데. 지금부터 본인의 능력을 과대 포장한 사람을 감자칩이라 명명해 보겠다. 일이라는 것이 그렇듯 너2023.03.22 09:13
협업엔 반드시 초조해지는 순간이 온다. 동료의 결과물이 내 맘 같지 않고, ‘나 혼자 하는 게 더 빨랐겠다’거나 ‘이걸 언제 다 설명해. 그럴 바엔 혼자 해버리고 말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네를 상상한다.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가기를 반복하며 결국 더 높아지는 그네의 찰랑찰랑한 선을 상상한다. 아, 지금 뒤로 가고 있구나. '프로그래밍 심리학'의 저자 제럴드 와인버그는 ‘비자아적 프로그래밍(egoless programming)’을 강조한다. 번역을 거치며 어려워졌는데, 쉽게 말해 일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일하는 방법을 다시 세팅하자는 말이다. 일이 곧 나이며, 나는 단편적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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