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평소에는 온갖 공식과 통계를 들먹이며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양 떠들다가도 막상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예측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곤한다. 30년대 대공황 때 하버드대학의 유수 경제학자들이 경제 동향을 예측하겠다며 하버드경제연구회라는 걸 만들었다. 이들은 대공황이 발생하자 줄곧 '완만한 경기 침체와 곧이은 회복'만을 외쳤다. 하지만 불황의 유령은 이후 10년동안 자본주의 시장을 떠돌았다. 최근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이같은 경도(傾倒)된 인간관과 이해할 수 없는 가정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들이 시장현상뿐 아니라 시장 밖 영역인 심리학, 사회학, 심지어 과학까지 설명하려 든다. 경제학과 무관해 보이는(물론 그들은 연관성이 크다고 주장하지만) 현상들, 즉 범죄, 흡연, 이혼, 성매매 등을 경제학은 개인들이 손익 계산을 바탕으로 행한 합리적 행동의 결과로 설명한다. 범죄자는 범행을 통해 얻을 이익과 비용을 따져본 후 그 득실을 비교해 충분히 수익이 발생하면 계획을 행동에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빈곤이나 실업, 사채업, 인간의 장기 판매 등 온갖 경제적 현상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시도한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몸, 혈액, 장기, 유아 등의 이른바 '절망적 교환(絶望的 交換)'에 대해 경제학자와 신자유주의자는 이를 금지하지 말고 오히려 공식적으로 허용해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이를 팔아 돈을 쥘 기회를 넓혀 주자고 주장한다. 그것이 이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거나 혹은 소득보다는 여가를 중시해 노동을 덜 한 사람들일뿐이다. 따라서 실업이 그렇듯 가난에 대해 경제학자가 특별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에서 철저히 미국적인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이 대한민국 경제계의 주류를 형성했고 이후 경제학은 현실사회에의 접목 및 발전적 계승이라는 과정을 생략한채 오로지 돈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본인의 귀책이나 태만이 아닌 다른 환경적 이유로 인해 출발선에서 뒤쳐졌거나 아님 아예 출발선에도 서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도전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패자부활전을 열어주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고 그것이 곧 경제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제의 주체인 인간 그 자체에 시선을 향하려 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은 '비겁한 미래학'에 머물 것이다.
경제학의 역사에는 소위 엄청난 대사건들이 있었다. 그 사건들은 당시에는 나방의 작은 날갯짓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학의, 아니 인류의 삶의 모습을 바꿔놓은 엄청난 태풍이 되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왁자지껄 경제학'을 통해 그 우행(愚行) 혹은 선택의 과정들을 반추(反芻)해가며 출구없는 탐욕의 시대,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