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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363)] 내일을 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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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363)] 내일을 여는 집

[글로벌이코노믹 한소진 덕신고등학교 교사] 민족의 대이동 설 연휴를 보내고 다시금 일상의 자리를 찾는 우리들. 고속도로에 늘어선 자동차들처럼 거북이 걸음이고 싶은 것은 비단 나뿐일까. 달콤한 휴식이었던 만큼 일터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영 내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일상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치열한 삶속에서 담담하게 희망을 찾으며 살아갈 것을 알기에, 오늘은 작가 방현석의 ‘내일을 여는 집’이라는 소설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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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빛바랜 책표지와는 달리 기대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이 줄 수 있는 날카로운 현실감과 감성의 충만함이 무엇인지를, 그 정수를 깨닫게 해 주는 소설 ‘내일을 여는 집’.

주인공 박성만과 오강범, 천수, 지용석씨, 기호 등 그들의 삶에는 모두 고단함과 피로가 느껴진다. 하지만 결코 그 삶이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소설의 막바지에 다다른 작중인물들의 아련한 모습은 소소하면서도 다정다감하다. 그리고 이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성만은 대성 중공업 공작1부에서 일하던 A급의 노동자였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에게 구정 보너스 미지급으로 인해 열린 부서회식은 삶의 치열한 투쟁을 안겨준다. 추위에 움츠러든 얼어붙은 두 손을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주범은 바로 돈 자체가 아니라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정당하게 대하지 않는 부조리함이 아닐까 싶다.

유아원에 맡겨놓은 새날이를 데리러 가는 성만의 뒷모습은 여간 쓸쓸해 보이는 게 아니다. 그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를 무참히 짓밟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뻔뻔함은 치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삶이란 이처럼 슬프도록 치열한 것인가.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겐 생계가 달려있는 소중한 그 삶의 현장을 잔혹하게도 걷어찬 대성중공업을 향해 성만은 짓밟힌 삶의 한 조각을 되찾아달라며 맹렬히 투쟁한다. 그것은 정당했다. 하지만 성만의 삶을 앗아간 그들의 입술은 그것이 자랑인 양, 거만하게 웃고 있다. 부조리한 권력의 앞에서 끝까지 처절하게 권리를 주장한 노동자들의 삶은 정말 고되고 외로웠을 것이다. 성만의 아내 진숙이 보여준 가슴을 울리는 용기, 그리고 승리는 숫제 쓰러진 가슴을 일으켜 세우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았다. 함께 고배를 나누고 투쟁했던 강범과 천수마저 복직이 되었는데도 혼자 새 직장을 찾아 헤매며 지배권력의 횡포를 눈물로 감당할 수밖에 없던 성만의 가슴은 오죽했을까. 그 스산함 속에서 인식과 새날이, 진숙은 골목길의 가로등처럼 따뜻하고 빛나는 존재 아니었을까. 가족이란 이렇듯 어떤 상황에도 그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다. ‘가난’이라는 딱지는 때때로 삶의 순간순간을 투쟁하게 만들고 죄악이라는 굴레를 뒤 집어 씌운다.

가난한 노동자의 사랑의 노래가 떠오르는 이 밤. 일찌감치 삶과 사람을 관조한 시인 정희성이 그러했듯, 나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있는 한 남자의 비장함과 애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웃어버리는 서글픈 행복을 지켜본다. 삶이란 때로 이처럼 지독한 역설이다. 해학이다.

아들 인식이가 노동자를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했듯, 빛나는 한강의 기적 속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나라의 오늘과 미래를 안고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음을 되새겨본다.

어쩌면 도심 한복판 가장 전망 좋은 곳에서 외제 와인 한잔으로 고귀함에 취해있는 누군가의 여유보다, 다이아몬드 마크 선명한 작업복을 입고 땀에 찌든 박성만과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더욱 찬란한 영광이 아닐까? 이 땅의 박성만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보낸다.

/글로벌이코노믹 한소진 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