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서(24)―정혜란 현대무용가(홍선미무용극단NU 단원)
홍선미 선생 안무 방식 차용관객과 소통하는 동작 창출
명확한 주제 표현력에 중점

동양란의 고고한 자태로 서양란의 화사를 수사하는 혜란은 자신의 한계를 고도의 수행으로 풀어내야 할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자신이 혼자보다 어울려 있을 때, 차분함보다 분주한 움직임에서 더욱 빛나리라는 천안(天眼)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낭만적 서사보다 가슴으로 사고하고 어울림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업에 주력해오고 있다.
심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낸 훈련 방법은 춤이었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녀는 레오타드와 타이즈를 입고 무용학원에 다녔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가정형편 때문에 그녀는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화장대 거울 앞에서 한국 무용의 기본 순서대로 기억나는 대로 추고 이불을 온통 깔아놓고 옆돌기와 스트레칭을 하면서 지냈다.


중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용 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나 작은 키는 언제나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그녀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이는 이화여대 출신의 홍윤선 선생이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그녀는 혜란의 첫 스승으로 무용 실기를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 덕분에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예순, 김현남 교수로부터 체계적 이론 및 실기를 배우게 된다.
‘기 죽지 않고, 당당하게, 용감하게’를 속으로 외치면서 혜란은 알토란 같은 의미 있는 결실을 맺고 있다. 그녀는 늘 명랑을 불러온다. 믿음으로 그녀의 진전을 반기는 스승들에게서 그녀의 춤 세계는 범위를 넓히게 되었고, 불면의 밤에서 수많이 반짝이는 별들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하나로서도 아름답지만 어울려 있을 때, 별들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을…….
혜란은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기에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인정받는 제자들을 키우고자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신은경 교수로부터 무용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현대무용계의 빛나는 안무가 홍선미 선생을 만나면서 인정받는 무용수, 안무가가 되었다. 그녀의 은인이자 멘토인 홍 선생은 혜란의 장점을 발견, 발전시키고 안무, 무대, 조명, 음악 등을 세세히 지도해주었다.


혜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제목 속에 주제를 두고 관객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맞춘다. 그녀의 안무 데뷔작은 2008년 9월 27일 경기도 양평 바탕골에서 공연된 "신데렐라를 아시나요?"이며, 제목 속에 자신이 ‘신데렐라’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무용협회 신인무용가전 출품작 "차라리 몰랐다면"(2010)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마음의 병, 그 갈등상태를 솔로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녀는 많은 출연작 속에 미미한 존재였지만 포이동 M극장에서 본격적으로 안무 방법론에 눈을 뜨게 된다. 몸의 미학을 숙지하면서 춤 사상이 깊이 고뇌한 일상에서 표출된 문학, 민족 정서가 바탕이 된 역사, 자신을 성찰케 하는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혜란이 고민하며 탄생시킨 작품이 "MORE"와 "Tolerance"이다.
M극장 공연작 "MORE"(2011)는 소유욕은 원초적이고 본능적 인간의 심리이지만 그것을 버림으로써 더 큰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처음 불빛을 경험한 사람, 이미 불빛의 존재를 즐기는 사람, 불빛의 존재를 알려주는 사람, 이 세 명이 더 많은 불빛을 소유하고자 서로의 불빛을 향해 달려간다. 큰 충돌들이 일어나지만 갑작스러운 강하고 큰 불빛에 의해서 세 명은 작은 사람이 되고 오히려 충돌을 피한다.

혜란의 춤 상상이 가져온 변화, 이슈가 되는 문화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무용 메소드로 풀어내고 ‘판틴’을 재해석해내며 춤을 즐기게 된다. 그녀는 자신만의 현대무용의 작은 화두인 "Anything"과 "떨림"으로 자신의 안무 품격을 높인다. 탄력을 받은 그녀의 작품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여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홍선미류’ 정혜란 춤으로 발전할 것이다.
강동아트센터와 함께하는 춤춤춤 페스티벌에 출품된 "사랑을 꿈꾸던 판틴"(2013)은 2013년 최고의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판틴의 이야기를 다룬다. 행복한 사랑을 꿈꾸던 그녀를 버리고 떠나간 남자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인생을 표현한 작품이다. M극장 공연 프로젝트 "판틴, 남겨지다"(2013)는 "사랑을 꿈꾸던 판틴"에서 쌓인 나무의자 속에 있는 한 명의 판틴과 자신을 존재를 찾아가려는 또 다른 한 명의 판틴이 등장, 판틴을 두 명의 자아로 만들어 서로를 바라보도록 확장시켜 만든 작품이다.



정혜란, 현대무용계의 또 다른 생존의 터를 찾아 극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춤꾼이다. 그녀의 일렁이는 가슴엔 ‘춤꽃’이 활짝 피어있다. 우울을 극복하고 정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싱그럽다. 그녀가 학생들에게 희망의 나침반이 되고, 그녀의 작품들이 정면대결의 대상이 되며, 번뜩이는 기지로 만들어질 그녀의 신작들이 현대무용계에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