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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 별세, 향년 70세…70년대 대표 저항가수 "포크의 한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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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 별세, 향년 70세…70년대 대표 저항가수 "포크의 한국화"

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가수 양병집이 지난 24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가수 양병집이 지난 24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 양병집이 별세했다. 향년 70세.

25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양병집은 전날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지난 24일 평소 친분이 있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와 단골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 평론가가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 카페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자택에서 숨진 고인을 발견했다.

소박하면서 거친 목소리의 소유자인 양병집은 김민기(71), 한대수(73)와 함께 70년대 3대 저항가수로 꼽힌다.
고인은 10대 때부터 음악 광이었고,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부친의 반대로 음악을 포기하고 증권회사에 입사했다가 1972년 음악가로 중 앞에 섰다. 증권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양병집은 '월간 팝송'이 주최한 '제1회 포크 콘테스트'에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당시 동생 이름 '양경집'으로 참가했다. 미국 포크 록 대부 밥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역(逆)'으로 3위로 입상했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로 시작하는 노래다. 수상자 호명 때 '양병집'으로 잘못 호명됐고 이후 이름을 양병집으로 바꿨다.

증권사를 그만 둔 양병집은 이후 신촌 라이브카페를 무대로 활동했다. 1972년 포크 가수의 산실이었던 '제1회 맷돌' 무대에 송창식, 김민기, 양희은, 사월과오월 등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4년 발표한 데뷔앨범 '넋두리'에는 '역', '서울하늘', '타박네' 등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곡이 실렸다. 하지만 사회비판적인 내용은 유신정권의 검열에 걸려 발매 3개월 만에 판매금지처분을 받았다. '타박네'는 이후에 서유석이 불러 더 알려졌다.

고인은 1986년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한동안 음악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2001년 현지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한 뒤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2005년 7집 '페이드 어웨이(Fade Away)', 2013년 8집 '에고&로고스(Ego&Logos)'를 발매했다. 2016년에는 들국화 원년 멤버인 조덕환과 함께 '흔치 않은 노래들'을 발매하기도 했다.
지난달 고인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자전적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를 출간했다.

박성서 평론가는 "우리나라 전래 구전가요뿐만 아니라 미국 포크에 우리 현실을 담아 슬프고도 아름다운 '포크의 한국화'에 성공했다"면서 "양병집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나라 70~80년대 사회의 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다. 삶을 직시하고 현실을 꿰뚫는 가사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그가 부른 노래들은 번안곡 조차 미국 포크라기 보다 한국적이다. 판소리를 닮은 거친 창법도 한몫한다"면서 "70년대를 거칠고 쓴 목소리로 풍자해 노래에 담았지만 그의 노래 속에는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자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애도했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