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아동의 진술은 성인의 진술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될 수 없다. 아동은 피암시성이 높고, 기억의 출처를 혼동할 가능성이 크며, 질문자의 태도와 표현 방식에 영향을 받기 쉽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저연령 아동의 경우에는 이러한 취약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반복신문과 유도질문은 기억을 정교화하기보다 오히려 변형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아동 진술이 핵심 증거가 되는 현실에서 법원은 이를 배척할 수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도 없는 난제를 안고 있다.
대법원은 2006도2025 판결 등을 통해 아동 진술 신빙성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였다. 핵심은 일관성, 구체성, 직접 경험성, 허위 동기 유무, 경험칙 부합성, 객관적 증거와의 합치, 외부 영향 가능성, 조사과정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다만 일부 세부 불일치나 표현의 미흡함은 연령적 특성상 허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형식적 모순에 매달리기보다 진술 형성과정을 입체적으로 보라는 취지이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최근 실무에서는 전문심리위원이나 진술분석관의 의견이 재판의 무게추를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아동 진술의 신빙성 평가는 본질적으로 사회과학적·임상적 판단 영역에 속한다. 유전자 분석과 같은 경성과학과 달리, 문화적 맥락과 해석자의 전제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 따라서 전문가 의견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자료일 뿐, 진실 여부를 직접 단정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의 기본 원리는 이미 대법원 99도1108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명확히 확인된 바 있다. 법관 면전에서의 심리와 반대신문은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의 핵심이다. 이러한 흐름은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재확인 된 바, 2018헌바524에서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신뢰관계인 등의 진술만으로 증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위헌으로 판단하였다.
이 규정에 대해 피해자 보호라는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하였으나, 반대신문권을 사실상 배제하는 구조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결정적 증거가 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반대신문권 제한은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였다.
이 결정의 함의는 분명하다. 피해자 보호는 정당한 공익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반대신문권을 전면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면 배제하지 않더라도 증거보전절차, 비공개심리, 분리신문, 영상중계 등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 절차 설계를 통해 양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음에도, 일률적 배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결국 쟁점은 균형의 문제이다. 아동 진술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배척하는 것도 오류이고, 보호 필요성만을 앞세워 비판적 검증을 생략하는 것도 오류이다. 특히 전문가 의견은 그 권위에 기대어 사실판단을 대체하는 순간 위험해진다. 사회과학적 평가가 법적 확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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