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아시아 최대 경제강국 일본은 경우가 많이 다르다. 이 정도로 증가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재택근무제가 널리 퍼지지 않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그 배경을 짚어봤다.
◇일본의 재택근무비율, 평시보다 10%P 늘어 20%
14일(현지시간) 포춘에 따르면 산업계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컨설팅기관인 일본생산성본부(JPC)가 최근 조사를 통해 파악한 일본의 재택근무 현황은 놀라운 수준이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뒤 재택근무제를 시행 중인 기업은 전체의 20%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비해 10%포인트 증가한 결과가 이 정도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 비율이 종래보다 17% 늘어난 44%에 달하는 것과 상당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그 배경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일본의 ‘꼰대’ 샐러리맨
일본 수도 도쿄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한 직장인은 포춘과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라는 전례 없는 상황에서도 재택근무 문화가 일본에서 크게 확산되지 않은 이유로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시대에 뒤쳐진 직장 상사들을 지목했다.
그는 “일본의 ‘꼰대’ 샐러리맨들은 줌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한 온라인 화상회의를 비롯해 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필수가 된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새로운 환경에서 당장 업무를 처리하는게 어려워진다는 생각, 윗사람이나 아랫사람들에게 실력 없음이 들통날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재택근무의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좀더 구조적인 시각에서 원인을 진단한다. 일본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오랫동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로 인한 폐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프리젠티즘은 ‘출석하다’는 뜻의 ‘present’와 ‘상태’ 또는 ‘주의’의 의미를 지닌 접미사 ‘-ism’를 연결해 만든 말로 비록 회사에 출근은 했지만 육체적·정신적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해 업무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샐러리맨들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출근중독’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생산성이야 어떻든 출근은 해야 일을 하는 것 같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결과가 재택근무를 꺼리게 하는 큰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상당수의 일본 직장인들이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다 일본의 대다수 기업들도 디지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 기업의 99.7%
일본에서는 코로나 4차 유행이 닥쳐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면서 다음달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을 치르냐 마느냐로 현재 한창 시끄럽다.
이렇듯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음에도 포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재택근무제를 적극 시행하거나 독려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출근제를 유지하든 재택근무제를 도입하든 기업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정부가 사실상 방치한 상태라고 포브스는 전했다.
여기에다 재택근무제가 확산되면 산업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이렇게 되면 결국 일본 경제가 위태롭게 한 책임으로 국민적 비난이 쏟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보수 자민당의 판단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근무 방식 변경 여부를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긴 결과 대다수의 기업은 재택근무를 도입하지 않은 방향으로 갔다.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직장문화는 재택근무제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 지속적으로 현장에서 직무 교육을 하고 직원간 및 부서간 의사소통이 항상 이뤄지는 등 직원들끼리 항상 대면을 해 일을 해야 업무가 제대로 돌아간다는게 일본 기업들이 대체로 갖고 있는 생각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업무가 구체적으로 분장돼 있지 않는 편이고 대략 2년씩 부서를 돌아가며 근무하는 일본식 직장 문화도 원격근무 체제의 도입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렌 후쿠시마 전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에 따르면 사람을 직접 보고 일하는 것을 중시하는 이런 문화는 특히 창업한지 오래된 회사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다. 그는 “그런데 문제는 일본 기업의 99.7%가 이런 중소기업이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