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미국이 자국의 첨단 과학기술 및 장비에 대한 중국 금수 조치를 한 후 중국이 기술 자립을 내세우고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기술 정보 수집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방어적 조치다.
한편, 중국도 미국 등 자유 진영에서 중국을 구조적 경쟁자로 규정한 후에 중국에 대해 부정적 뉴스를 양산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국의 이념과 체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스파이법을 제정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 미·중 과학기술 경쟁이 초래한 변화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전쟁이 심화되자 중국은 전략적 기술과 제품의 자급자족을 내세워 막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과학기술 봉쇄로 반도체, 청정에너지, 로봇 공학, 항공 우주 장비 및 신소재를 포함한 국가 전략 산업에서 고급 기술을 수입할 수 없게 되자 미·중 경쟁에 뒤질 것을 우려해 이들 기술 분야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을 자급자족하는데 너무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자 지리적으로 가깝고 기술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에 있는 한국, 일본, 대만에서 필요한 전문 인력을 영입해 과학기술을 조기에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최근 한국에서 발생했던 사건이 산업 스파이에 대한 우려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6월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의 영업 비밀을 훔친 혐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한 반도체 전 수석 엔지니어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중국 기업이 영업 기밀을 알고 있는 전문가를 빼돌리려는 의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첨단 산업 기술 정보에 대한 중국의 강한 욕망은 일본, 한국, 대만 정부나 기업이 산업 정보 보호를 강화에 힘쓰게 한다.
특히, 대만은 중국의 군사 위협도 강해지고 있어 군사 정보 보안이 국가적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반도체 등 IT 기술인력 유출 및 지적 재산권 도용을 차단하려는 방첩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 한국·대만·일본의 산업스파이 대응 강화
한국, 대만은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관련 법률을 보완하고 있으며, 일본도 상업 및 산업 스파이 법률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핵심 영향력 대상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그간 중국과 교역 등을 감안해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강압적 대응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최근 달라지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중국의 비밀 경찰조직을 적발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부인했지만, 비밀경찰 논란은 크게 이슈가 됐다.
한국의 군과 경찰의 방첩 조직과 외교부 등 관련 정부 부처가 일제히 동원되어 실태 파악에 나섰다.
중국에 있는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최첨단 사양 메모리 칩 제조가 미국의 수출규제로 어렵게 되고, 삼성전자 핵심 기술 엔지니어의 산업 스파이 적발 사건도 발생하면서 정부 당국과 기업의 산업 스파이에 대한 경각심도 새삼 강화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중국의 경제 스파이 활동이 증가하는 가운데 반도체 기술 절취를 막기 위해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최첨단 기술 유출을 막겠다고 밝히며 새로운 법률을 제안했다. 대만 내각은 국가 안보법에 ‘경제 스파이’에 대한 새로운 범죄를 제안해, 중국이나 ‘외국의 적대 세력’에 핵심 기술을 유출한 사람들에게 최대 12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또한, 대만 정부는 중국 기업이 제3국에 설립된 회사를 통해 대만의 인재를 불법적으로 유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률을 강화했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대만 내 투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대만은 반도체 등 산업기술 보호 외에도 양안 관계의 악화에 따른 대간첩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 침략에 앞서 다양한 내정 개입을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만에는 최소 5000명이 넘는 중국 간첩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총통 선거에 국민당 후보로 나선 한궈위(韓國瑜) 가오슝의 시장 당선을 목표로 중국이 수억 원의 자금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직 중국 스파이로 2019년 호주에 망명한 왕리창은 2018년 8월부터 SNS 계정 20만 개를 사용해 차이잉원 총통과 민진당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
대만군은 8월 초 국방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현직 육군 항공 및 특수 사령부 소속 군 간부와 전직 장교를 검거했다. 이는 중국이 대만 현역 장교의 포섭도 주저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만은 간첩 행위에 대해 나라와 국민을 팔아넘긴 행위라고 규탄하고, 중국 공산당 침투에 직면한 대만군에 대간첩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규정도 보강하고 있다.
대만은 2020년부터 외부 적대 세력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는 '반침투법'을 시행 중이지만, 중국에 매수된 정치인과 군인의 구속과 처벌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도 스파이활동 및 영업 비밀 보호 분야의 입법을 강화에 나섰다. 부정경쟁방지법이 영업 비밀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으나 최신 산업스파이 활동에 맞게 개정되지 않고 그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일본은 2021년부터 경산성을 중심으로 주요 기업에 기밀정보 보호를 위한 핸드북 제공, 기밀정보 보안 및 유출 대책에 대한 홍보를 확대하고, 2023년부터 영업비밀 보호 경각심 고취를 위한 민관포럼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말 국가 안보 전략 검토에서 일본 정부는 산업 및 상업 정보를 보호하는 것을 포함해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관련 분야 입법에 대한 후속 작업은 진척이 더디게 진행됐다.
다만, 일본은 반도체 관련 제조 장비 23종에 대해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는 2023년 7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하지만, 자민당 일각에서는 나토 사무실 일본 설치 논의, 중국의 대만 공격 이슈화와 일본의 미군에 대한 군사기지 추가 제공, 반도체 관련 장비 수출 금지 등이 잇따라 시행되면서 중국의 일본 산업 정보 수집 활동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영업 비밀 보호 분야의 입법 강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 중국의 반스파이법 시행
중국은 미국이 자국에 대해 첨단 과학기술 수출을 막고 주요 대학이나 연구기관, 기업에 근무하는 중국인들에 대해 경계를 강화한 데다 특히 미국과 서방이 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구조적 경쟁자’로 규정한 후 각종 매체에서 중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 정보 생산이 확대되자 자국 이념과 체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중국은 이에 반스파이법으로 대응에 나섰다.
해당 법안은 스파이 행위로 기존법에 규정한 국가기밀 제공 외에 △국가의 안전이나 이익과 관련되는 문건 △데이터 △자료의 제공·절취도 포함했다. 스파이 행위 적발을 강화하기 위해 담당하는 국가안전부 당국 권한 강화와 스파이 행위에 대한 벌칙도 높였다.
중국의 방첩법은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고 '간첩 활동'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며, 간첩 행위를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는 활동으로 넓게 적용했다.
처벌 규정도 특이한데 '범죄가 되지 않는 간첩 행위'에 대해 보안 기관이 최대 15일의 행정 구금과 최대 7000달러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반면, '범죄가 되는 간첩 행위'에 어떤 처벌을 할 수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보안 당국은 스파이 행위가 의심되는 이의 수하물 검사를 할 수 있고, 국가 안보를 위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출국을 금할 수 있다. 타인의 스파이 행위 관련 증거 제공을 거부해도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당국의 판단에 따라 정보 활용이 스파이 행위로 변질될 수 있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의 활용도 조심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