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36세의 기울기 시작한 선수지만 그만한 재능은 흔치 않다. 올해까지 3년 연속 올스타에 뽑힌 마르티네스다. 다른 조짐도 엿보였다. 뉴욕 양키스와 함께 ‘빅 마켓’을 양분해온 다저스는 올겨울 유난히 잠잠했다. 낚싯대를 드리우는 둥 마는 둥.
조용한 바다는 큰 파도의 예고편이었다. 다저스는 9일(현지 시간) 오타니 쇼헤이(29)와 10년 7억 달러(약 9260억원)라는 스포츠 사상 최고액 계약을 발표했다.
비록 10년에 나누어 지급하지만 한 운동선수에게 1조원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을 안겨주었다.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가 2017년 FC 바르셀로나와 맺은 4년 6억7400만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올 시즌 타자로 44홈런(AL 1위), 95타점, 투수로 10승5패 탈삼진 167개 평균 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물리적으론 불가능한 숫자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흉내 내서도 안 되는 공력이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오타니에게 러브콜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그러나 쉽게 그를 넘볼 수는 없었다. 막대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키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메츠가 그에게 입질을 보냈다.
오타니의 신앙 ‘2도류’
오타니는 왜 다저스를 선택했을까. 그 스스로 입을 뗀 적은 없지만 세 가지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첫째는 기후다. 오타니는 돈보다 ‘2도류’를 우선한다. 2018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LA 에인절스를 택한 이유도 ‘2도류’를 밀어 주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에인절스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그에게 ‘투수 오타니’를 원했다. 석기 시대 베이브 루스 이외에 ‘2도류’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오타니라고 예외일 순 없다. 에인절스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허락을 했다.
안 되면 포기하겠지, 그런 다음 투수를 시키자. 이런 계산이었다. 그런데 오타니는 두 개의 칼을 조자룡의 헌 칼처럼 제 맘대로 휘둘렀다. 거기에는 LA의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도 한몫을 했다. 추운 곳에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기 힘들다.
오타니는 2014년 니혼햄을 선택할 때도 ‘2도류’를 도와주겠다는 언약을 받고 사인했다. 뉴욕의 두 구단 양키스와 메츠는 ‘2도류’ 아닌 투수 오타니에 더 끌렸다. 그런데 오타니는 팔꿈치 수술로 2025시즌에야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두 팀의 머릿속은 복잡한 계산으로 뒤죽박죽이었다.
다저스는 투수 왕국이다. 내년 오타니 없이도 투수진을 꾸려갈 수 있다. 오타니는 지명타자로 활약하다 2025년 다시 ‘2도류’로 돌아오면 된다.
두 번째는 우승에 대한 열망이다. 이는 비단 오타니뿐 아니라 모든 선수의 바람이다. 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던 2016년 한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리그서도 우승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싶어 한다.
LA 다저스는 최근 11년 사이 10차례 지구 우승, 세 차례 리그 우승, 한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입맛에 딱 맞는 팀이다.
마지막으로 다저스에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있다. 그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출생지도 일본 오키나와다. 로버츠 감독을 만나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로버츠 감독은 이달 초 윈터미팅서 “다저스의 최대 목표는 오타니를 데려오는 것이다”라며 그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다저스는 노모 히데오를 시작으로 박찬호·류현진 등 아시아계 선수들을 받아들여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그들 모두 ‘최초’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노모는 첫 아시아 선수, 박찬호는 첫 한국인 선수, 류현진은 첫 KBO리그 출신이었다.
오타니 쇼헤이는 어떤 첫 번째로 기록될까?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