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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장례 산업, '죽음'을 넘어 '삶'을 기리는 사업으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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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장례 산업, '죽음'을 넘어 '삶'을 기리는 사업으로 진화

"고소득·고령화로 프리미엄 장례 급증...연 매출 수억 달러 규모로 성장"
인도회사가 만든 항아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도회사가 만든 항아리. 사진=로이터

동남아시아에서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닌, '삶'을 기리고 기억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장례 산업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 속에서 고급화, 맞춤화, 디지털화를 거듭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필리핀의 트레살린 카비코 씨는 남편의 장례식에 25만 페소(약 617만 원)가 넘는 돈을 지출했다. 고인의 뜻을 기리고 존중하는 것은 물론, 사랑과 보살핌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동남아시아에서는 장례식에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교한 의식, 호화로운 묘지, 사전 장례 계획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며, 인간뿐 아니라 반려동물 장례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UN은 동남아시아 사망자 수가 2022년 499만5000 명에서 2050년 8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장례 산업 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장례 풍습도 각기 달라, 맞춤형 장례 서비스 수요가 높다.

말레이시아 장례 서비스 기업 '더 원 라이프 플래닝'의 다니엘 총 이사는 "사전 장례 계획을 통해 가족들은 문화적, 개인적 선호도에 맞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전 계획 패키지 판매는 지난 5년간 매년 20~30% 성장했다.

1990년 설립된 '너바나 아시아'는 말레이시아 전역에 14개의 기념 공원과 센터를 운영하며, 매장지, 납골당, 장례 절차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풍수를 고려한 묘지 디자인, 애완동물 장례 등 고급화된 서비스도 제공한다.

필리핀에서도 장례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가톨릭 문화권인 필리핀에서는 장례 미사, 매장, 묘지 방문 등이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진다. 필리핀 최대 장례 기업 '포레스트 레이크 디벨롭먼트'는 지난해 24억7000만 페소의 매출을 기록했다.

필리핀 영안실 협회 대변인 조던 미란다는 "장례 패키지 가격은 3만 페소부터 시작하지만, 최대 1000만 페소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사람들은 장례식을 지위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장례 산업은 새로운 과제에도 직면해 있다.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장례 문화에서 벗어나 간소화된 의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COVID-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온라인 추모, 라이브 스트리밍 장례식 등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포레스트 레이크의 CEO 알비 제레즈-부르고스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고,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친환경 장례, 유골 용해 등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산업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남아시아 장례 산업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 고급화, 맞춤화,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 장례 산업의 혁신적 변화가 한국 장례 산업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소비자 니즈 변화에 맞춘 서비스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장례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했다.

첫째, 사전 계획 장례 상품의 개발이다. 비용 고정과 맞춤형 서비스를 결합한 상품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둘째, 프리미엄 서비스 확대다. 호텔식 장례식장, 라이브 스트리밍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도입이 필요하다.

셋째, 반려동물 장례 시장 개척이다. 1인 가구 증가와 반려동물 확대 추세에 맞춘 특화 서비스 개발이 요구된다.

장례문화연구원 관계자는 "한국 장례 산업도 디지털 전환과 함께 해외 진출을 모색할 시점"이라며 "특히 동남아 시장은 한국의 선진 장례 서비스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