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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엔비디아의 중국 귀환, 美 기술 패권과 中 반도체 자립의 '위태로운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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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엔비디아의 중국 귀환, 美 기술 패권과 中 반도체 자립의 '위태로운 공생'

14조 매출 손실에 백악관 설득한 엔비디아, 기술 종속으로 中 죈다
첨단 칩 숨통 트였지만…화웨이 등 자국산 개발 동력 잃을라 '딜레마'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중국 시장 복귀와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 사이에서 양국의 반도체 자립을 둘러싼 '위태로운 공생'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중국 시장 복귀와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 사이에서 양국의 반도체 자립을 둘러싼 '위태로운 공생'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사진=로이터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격전장인 반도체 시장에 중대한 변수가 발생했다. 인공지능(AI) 칩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암묵적 승인 아래 중국 시장으로 복귀하면서 양국의 셈법이 한층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엔비디아와 중국의 '타협하는 공생'은 앞으로 AI 칩 시장 전체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지난 2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번 복귀 배경에는 엔비디아의 절박함과 양국의 정치 타협이 자리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상무장관을 만나 "미국 칩 수출 제한은 실패작"이라고 설득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로비를 벌였다. 과거 세계 매출의 20~25%를 차지했던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최근 몇 분기 동안 발생한 매출 손실은 105억 달러(약 14조 원)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판매하지 못한 재고에 45억 달러(약 6조2311억 원)의 자산 상각까지 처리해야 했다. 이러한 경제 압박 속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희토류 무역 복원을 대가로 AI 칩 공급을 일부 허가하는 카드를 꺼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허가 소식이 나오자 엔비디아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장의 기대를 증명했다.

◇ 美 '기술 종속' 노림수와 中 '시간 벌기'의 동상이몽


이번 조치를 향한 미국의 전략 계산은 명확하다. 미국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우리는 중국이 계속 미국 기술 스택(stack)에 의존하기를 원한다"고 그 뜻을 분명히 했다. 그 배경에는 중국 IT 기업들이 단기간에 미국 기술 생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기술 종속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 중국 시장을 완전히 차단한다면 오히려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자체 칩 개발이 빨라져 미국의 기술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힘은 단순히 하드웨어에만 있지 않다. '쿠다(CUDA)'로 알려진 강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API, 개발 도구를 포함한 폭넓은 생태계를 통해 세계 개발자들을 묶어두는 핵심 요소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중국 내 입지 회복에는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과거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25%에 이르렀던 중국 시장 점유율의 회복 목표를 10~15% 수준으로 낮춰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 자립 노력과 화웨이 등 현지 경쟁이 심해진 탓이다. 현재 H20 칩 재고가 제한적이고 당장 생산을 다시 시작할 계획도 없어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같은 주요 고객사들은 공급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공식 배송 역시 미국 정부의 수출 라이선스 발급이 완료되어야 한다.

엔비디아의 복귀는 중국에 '양날의 검'이다. 당장은 첨단 AI 모델 개발에 숨통이 트이지만, 멀리 보면 자국 산업 발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테자스 데사이 글로벌 X ETF 연구 책임자는 "엔비디아 칩이 공급되면 자국산 칩 프로젝트의 추진력이 약화되고 민간 투자와 인력이 다시 미국 생태계로 쏠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화웨이가 '어센드(Ascend)'라는 AI 칩을 스스로 개발하고 있으나 소프트웨어와 개발 환경의 깊이, 유연성 면에서 엔비디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 '추론' 칩 시장으로의 전환…시간은 중국 편 될까


그러나 AI 반도체 자립을 향한 중국의 장기 방향은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단기 지연에도 기술 국산화 전략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데이터로 AI 모델을 '훈련'하는 현재 시장이, AI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는 '추론(inference)' 중심으로 바뀔 때 중국에 새로운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본다. 화웨이뿐 아니라 수십 개의 중국 신생 기업들이 엔비디아와 다른 저가 맞춤형 추론 칩 시장을 목표로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시장 판도의 변화를 예고한다.

엔비디아는 정부의 전략 판단과 자사 로비 역량 그리고 강력한 기술 생태계를 바탕으로 중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가까이는 수익을 확보하고, 멀리는 미국의 기술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반면에 중국은 이 소강상태를 활용해 국산 칩 내재화를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이다. 앞으로 미국의 규제 강도 변화가 세계 공급망과 기술주 주가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정부의 정책 신호에 각별히 주목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