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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월 연속 하락’, 멈추지 않는 중국의 가격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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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월 연속 하락’, 멈추지 않는 중국의 가격 전쟁

가격은 떨어지고, 일자리는 흔들…첨단 산업도 살아남기 힘든 시대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스포츠 장비 제조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자전거 강철 테두리를 연마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스포츠 장비 제조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자전거 강철 테두리를 연마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중국 생산자물가가 33개월 동안 내림세를 이어가자,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국내외 시장에선 이번 산업 능력 축소는 답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고개를 든다. 지난 22(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산업 전반의 공급 과잉을 손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33개월째 이어지는 가격 하락, 더욱 치열해진 싸움

중국 국가통계국은 6월 생산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6% 떨어졌다고 알렸다. 이는 20237월 이후 최대 낙폭이며, 지난 20229월부터 무려 33개월째 떨어진 것이다. 원자재 부문 가격은 13.2%, 가공품은 5.5%, 소비재는 1.4% 각각 줄었다. 이처럼 산업 전반에서 가격 인하 압력이 강하다.

중국 공산당 핵심부는 최근 값싼 가격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영 매체들은 이런 산업 경쟁이 경제에 해를 끼치는 이유라고 지적했으며, 특히 자동차·배터리·태양광 등 첨단 산업이 집중 타깃으로 거론됐다.
2015년과 달라진 현실…산업 구조조정, 더 어려워졌다

10년 전 중국은 철강·시멘트·석탄 생산을 줄이면서 54개월 연속 내리던 생산자물가 하락세를 멈추는 데 성공했다. 당시 공급 축소가 디플레이션 탈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호주 멜버른의 모나쉬대학 경제학과 허링쉬(He-Ling Shi) 교수는 이번 공급 개혁은 2015년 때보다 훨씬 어렵다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중국 전체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난 7월 현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실적으로 중국 생산 설비 대다수가 민간 소유이며, 지방 정부는 기업 투자와 고용을 장려하는 보조금·토지 제공·우대 대출 등을 풀어 지역 경제 살리기에 힘써왔다. 이런 현실 탓에 중앙 정부의 감축 정책과 지방 정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14.5%에 이르러 고용 안정이 특히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떠올랐다. 수출 기업과 국유 기업도 최근 임금 삭감과 인력 축소에 나서면서 고용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베이징대학교 경제정책연구소 옌세 부소장은 지방 정부의 저항으로 인해 중요한 생산 능력 감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 첨단 산업 중심 확산된 과잉 공급과 투자 집중

중국은 한때 새로운 3대 성장 동력이라고 불렀던 자동차·배터리·태양광 부문에 과잉 투자와 생산능력 과잉 현상이 심각해졌다. 소시에테제네랄 분석가들은 생산 설비 가동률이 대부분 산업에서 80%를 웃돌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은 중국의 값싼 제품이 전 세계 시장에 넘쳐나면서 자국 산업을 위협한다고 지속해서 비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화학회사 임원은 “2023년부터 생산 과잉이 명확했는데도 기업들은 계속 설비를 늘렸다.”면서 돈을 빌리기 쉽고 이익을 포기해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일자리 줄어드는 딜레마…도시 재개발도 한계

산업 능력 줄이기는 바꿔 말하면 관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진다. 2010년대 이전 중국 공급 축소 당시 수천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최근에는 도시 판자촌 재개발 등으로 일자리를 일부 보충했으나, 제조업은 예전처럼 많은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

멜버른대 쉬 교수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감당할 공간이 경제 전반에 부족하다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다른 산업이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UBS 중국 부동산 담당 존 람은 과거에는 부동산 경기가 생산 능력 감축에 따른 일자리 손실을 흡수했지만, 현재는 부동산 자체가 어려워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시장에 돈 돌게 해야 산다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 모두 공급 능력 감축은 단기 해법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국 당국이 추진하는 산업 능력 감축은 2015년 때보다 훨씬 어렵고, 빠른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무엇보다 생산 축소가 고용 충격을 불러와 경제 성장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수요를 회복하는 방안이 공급 조절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중국 내수 소비가 살아나고 투자 환경이 바뀌어야만 장기적 디플레이션 압력 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 구조 조정 속에서 중국 경제는 복잡한 진통을 거치며 5%대 성장률 목표를 겨우 유지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