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민간 석유기업인 미국의 엑손모빌이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와 러시아 사할린 프로젝트 복귀를 비밀리에 논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에서 철수한 이후 극적인 화해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비밀 협상, 사할린 복귀 조건 모색
WSJ에 따르면 엑손모빌 고위 임원인 닐 채프먼 수석부사장이 올해 초 카타르 도하에서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사할린-1 프로젝트’의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사할린-1 프로젝트는 러시아 사할린섬 인근 오호츠크해에서 엑손모빌·로스네프트 등 국제 컨소시엄이 지난 1990년대부터 진행해온 대규모 석유·가스 개발 사업이다.
세친은 푸틴 대통령 측근으로 미국 제재 명단에 올라 있으나 엑손모빌은 미 재무부로부터 협상 허가 라이선스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엑손모빌은 사할린에서 3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난 2022년 철수 과정에서 약 40억달러(약 5조9000억원)를 손실 처리했다. 러시아 정부가 매각을 막고 지분을 몰수한 데 따른 것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이번 복귀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손실 회수를 목표로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외국인 투자 길 열어
푸틴 대통령은 알래스카 회담 당일 외국 기업이 사할린 운영 법인에 다시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다만 조건으로는 해외 장비 및 부품 제공, 대러 제재 완화 로비 등을 내걸었다.
◇美·러 협상, 평화 프로세스 연계
엑손모빌의 복귀는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협상 결과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성공할 경우 서방 기업의 재진출이 가능해지지만 협상 결렬 시 제재가 더 강화될 수도 있어서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 속에서도 원유 생산을 유지했으나 기술·투자 부족으로 장기적 생산 능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은 러시아 정유시설과 송유관 가동에도 차질을 빚었다.
◇전략적 의미
엑손모빌의 복귀는 서방 자본과 기술 확보를 원하는 러시아에 큰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있다. 사할린 프로젝트는 엑손모빌 전체 생산량의 약 3%를 차지했으며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한 안정적 원유 공급원이기도 했다.
다만 러시아 경제가 제재·고금리·인플레이션으로 둔화되고 국가의 자산 압류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서방 기업들이 과거와 같은 경영 환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